요즈음 많은 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이 길고 힘들었던 4년 동안의 대학 입학 준비를 끝내고, 마침내 원하던 대학 캠퍼스에 첫발을 디디게 되었다는 성취감과 기대에 부풀어 있을 것이다.
대학 입학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는 현실에서, 그 어려운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했다는 것은 학생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학부모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자축할 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나 자신 오랫동안 학생들의 성장 이정표라고 할 수 있는 졸업과 입학을 지켜보면서, 학생들과 함께 감격하고, 기뻐하고 신이나 하면서, 교육자로서 큰 보람과 즐거움을 느꼈었다.
한참 희망에 부풀어 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교육자의 입장에서 조심스럽게 몇 가지 당부하고 싶은 사항을 적어본다.
첫 번째 말하고 싶은 것이 대학에 입학했다는 것이 곧 4년 후에 졸업장을 손에 쥔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옛날 옛적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일단 대학에 입학을 하면 거의 자동적으로 4년 후에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던 때가 있었다. 또 대학 졸업장만 손에 쥐면 대부분 화이트칼러 직에 직장을 얻을 수 있었고, 그럭저럭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태평세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학문의 양으로 보나 깊이로 보나 대학에서의 공부는 고등학교 때 공부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 명문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자기의 두뇌를 믿고 자만심에 빠져 공부를 게을리 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것이 많은 선배들의 조언이다. 캠퍼스에 있는 모든 학생이 나만큼 또는 나보다 더 우수하다는 것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칫 방심하다가는 인정사정없이 낙오하게 된다.
두 번째로 당면하는 어려움이 전공 결정이다.
이미 전공을 결정하고 들어온 학생들 중에서도 1, 2년 공부를 해보고는 전공을 잘못 택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새 전공으로 변경하는 예가 적지 않다. 새로 선택한 전공에 만족해서 문제없이 대학생활을 이어나가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학생에 따라서는 전공을 여러 번 바꾸는 경우도 있다. 자연히 졸업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 부담이 커지고, 계속 4년을 한 가지 전공에 몰두한 학생에 비해서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에 불리한 입장에 있을 수도 있다.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부모와 선생님들의 감시와 잔소리에서 풀려났다는 해방감에 들떠서 또래들과 몰려다니며, 각종 클럽모임, 단체활동, 주말파티 등에 귀중한 시간을 소비할 수 있다. 물론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위해 제공하는 다양하고 풍부한 기회를 활용해서, 자신의 지적, 사회적 성장을 이루고, 동시에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얻는 것도 대학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특권이다.
그러나 대학생활의 낭만에 도취한 나머지 성적관리를 등한히 했다가는 4년 후 대학원 진학이나 유수한 직장 취업에 큰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알고 있어야 한다. 더욱 더 조심해야 할 일은 지나치게 긴장을 푼 나머지 ‘파티 애니멀’이 되어서 흡연과 폭음을 배우고, 마약이나 섹스, 노름에 빠지게 되고, 학업을 소홀히 해 결국 학교로부터 경고조치를 받거나, 퇴교조치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 따라 인종적으로 대단히 보수적인 분위기의 캠퍼스가 있다. 예전처럼 소수민족 학생들에게 노골적으로 인종차별을 하는 일은 드물어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소극적으로 하는 차별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이 학생들의 경험담이다.
강의실에서는 옆자리에 앉아 공부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사이지만, 막상 저녁시간이나 주말 사교모임에는 백인들끼리 똘똘 뭉쳐서 소수계 학생들의 참가를 봉쇄하는 것이 한 예이다.
사실 사사로운 모임에서 같은 배경을 가진 학생들끼리 모여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백인들끼리의 모임을 인종차별이라고 분개할 것까지는 없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지. 마지막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로 우울증을 들 수 있다.
학생들이 겪는 우울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과도한 학업부담, 갑작스런 환경변화, 나 혼자만이라는 고립감, 경제적인 걱정, 장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등이 몇 가지 예이다. 가벼운 우울증은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흔히 겪는 증상이다. 대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지 우울증이 심한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게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생 자신의 노력은 물론이고 주위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녀가 학교생활에 불만이 있거나, 문제가 있다고 느낄 때에, 첫 번째 상의할 대상으로 부모를 택한다면 문제가 순조롭게 풀릴 가능성이 크다. 주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자녀의 문제를 부모만이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가족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게 되고, 문제가 커져서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평소에 반드시 자녀와 대화의 통로를 열어놓아야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공부가 힘들다고, 전공을 바꾸고 싶다고,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가 싫어졌다고 호소하는 자녀에게 책망이나 강요, 냉담, 비웃음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문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김순진<교육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