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저무는 케이블 TV 시대

2010-04-15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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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미국에 이민 와 살고 있는 한인들 가운데는 한인 비디오 가게에서 한국 드라마 테입을 무더기로 빌려다 밤을 새며 시청한 추억이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 회를 보면 다음 회를 봐야 하는 인기 연속극의 중독성 때문에 내일 직장은 둘째 문제고 나온 테입을 다 보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비디오 폐인’이란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다. 이 덕에 한국 비디오 가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떼돈을 벌기도 했다.

다 옛날이야기다. 최근 코리아타운 플라자 내에 있는 대형 비디오 업소가 문을 닫았다. 비디오를 빌려주는 가게의 앞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인 비디오 가게뿐만 아니다. 미 최대 비디오 업소인 블럭버스터도 영업 부진과 과도한 부채로 파산 위기에 놓여 있다. VHS 시대가 가고 DVD가 나오면서 이를 우편으로 배달해주는 넷플릭스와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해 폐업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DVD를 우편으로 받아보는 시대도 벌써 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인터넷으로 웬만한 영화나 드라마는 다 볼 수 있게 된 것이 요즘 세상이다. 집에 무선 인터넷이 있는 사람은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사면 바로 넷플릭스에 연결돼 다운로드 할 필요도 없이 수천 개의 영화를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등장으로 피를 보고 있는 것은 비디오 렌털 회사만이 아니다. 지금 미국 TV 시장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케이블과 위성 TV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작년부터 공중파 방송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사람들은 무료 TV의 맛을 알게 됐다.

10달러짜리 안테나 하나만 달면 수십 개의 디지털 채널을 공짜로 24시간 볼 수 있다. 화질도 오히려 케이블보다 더 좋다. 한인들의 경우 SBS, MBC, KBS, MBN 등 한국의 주요 네트웍을 다 볼 수 있고 특히 MBN의 경우는 해저 케이블로 연결돼 모든 뉴스를 한국과 똑같이 실시간으로 보내준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괜히 한 달에 100 몇 십 달러씩 내고 케이블이나 위성 TV를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당장 케이블 회사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미국 내 1억 가구가 케이블이나 위성 TV를 보고 있다. 그러나 증가일로이던 이 숫자가 처음으로 줄어들기 시작하고 있다. 케이블 TV 시청자수는 최고치에서 80만 가구가 줄어든 상태며 이 숫자는 내년 말까지 160만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와 동시에 1주일에 1회 이상 온라인으로 비디오를 보는 가구 수는 2008년 12%에서 작년은 17%, 올해는 21%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이미 한국에서는 셀폰으로 온갖 TV 연속극과 최신 영화를 보는 것이 보편화 돼 있다. 케이블이나 위성 TV 회사 주식에 투자하려 생각 중인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접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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