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반신불수에 치매 상태가 된 친구 아들이 오히려 부러울 지경”이라고 한 어머니는 넋두리를 한다. 소설가 박완서 씨의 소설에 등장하는 어느 아들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다만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실체가 그렇게 부럽더라”고 어머니의 탄식은 계속된다.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어 하는 말이지만 그것은 박완서 씨 자신의 말이었다. 1988년 삶의 기쁨이자 자랑이었던 외아들이 25살에 세상을 떠나자 그는 오랜 시간을 절망감에 빠져 지냈었다. 고통을 잊을 길이 없어 술에 의지하기도 했다고 한다.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하는, 하늘을 향한 원망과 부정으로 슬픔에서 헤어나기 어려웠다고 그는 훗날 털어놓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큰 것은 가족을 잃는 고통이다. 아무리 가족끼리 서로 미워하고 으르렁댄다 해도 그 모두는 살아있으니 가능한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다. 그래서 어버이를 여읜 슬픔을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고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이라는 말이다. 크고 깊은 슬픔이다.
그에 반해 자식을 잃은 고통은 동물적이다. ‘슬프다’의 단계를 넘어 너무도 참혹해서 참척(慘慽)이라고 표현된다. 자신의 사지가 끊겨 나가고 가슴이 찢겨져 나가는 듯한 처절한 고통이다. 바로 단장지애(斷腸之哀)다.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지는 듯한 슬픔이다.
옛날 중국 서하(西夏)에 살던 자하라는 사람은 아들을 잃고 너무 슬피 운 나머지 눈이 멀었다고 한다. 거기서 유래한 말이 서하지통(西河之痛), 혹은 상명지통(喪明之痛)이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의미한다.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탤런트 고 최진실 씨의 동생 최진영 씨가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연예인 자살사건이 너무 자주 일어나 그러잖아도 문제가 되는데, 이번에는 한 집안에서 두 사람이 자살을 했으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최진영씨의 사망 소식이 보도되자 당장 나오는 말은 “그 어머니는 이제 어떻게 살겠느냐”는 것이다. 1년 반 사이에 남매를, 그것도 둘 다 자살로 잃었으니 그 어머니의 충격은 상상하기 어려운 지경이다.
어머니 정옥숙 씨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통곡하며 아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그대로 실신했다고 한다. 천근같은 납덩어리가 가슴을 짓눌러서 숨도 쉬기 힘든 상태일 것이다.
자식의 죽음은 부모에게 가장 잔인한 형벌과 같다. 먼저 떠난 자식을 가슴에 묻고 부모는 평생을 아파한다.
천안함 해군장병 46명의 생사가 아직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앞날이 창창한 아들들이 서해 깊은 바다 속 어딘가에서 헤맬 생각을 하며 부모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시간은 흐르고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니 부모들은 애가 탄다. 실종자들 중 단 몇 명이라도 구조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래서 “다만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