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강보험 격세지감

2010-03-2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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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세기의 시도 끝에, 1년여의 토론 끝에, 오늘 미국에서 건강보험 개혁이 법으로 제정되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3일 의료개혁 법안 서명식에서 이렇게 연설을 시작했다. 대통령 취임 후 제1과제로 의료개혁을 꼽았던 오바마로서는 감격스런 순간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높고 높은 관문을 통과해낸 기쁨에 민주당은 잔치 분위기이고, 그동안 돈이 없어서, 병력 때문에 보험이 없었던 3,200만 무보험자들도 기대에 들떠 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오래 전에 자리 잡은 전 국민 건강보험제가 미국에서는 유난히 뿌리를 내리기가 어려웠다. 내로라하는 지도자들이 개혁의 칼을 빼 들었다가 무참하게 주저앉은 적이 부지기수였다. ‘거의 1세기의 시도’였다고 오바마는 장구한 세월에 빗대어 개혁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100년 전인 20세기 초에도 미국에서는 전국민 건강보험 법안들이 상정되었었다. 그리고는 번번이 법제화하는 데 실패했다. 결과는 같지만 배경을 살펴보면 지금과는 사정이 달랐다.

지금은 건강보험에 가입하고 싶어도 너무 비싸서, 혹은 보험사가 받아주지를 않아서 문제가 되지만 당시에는 보험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국민이 너무 없는 것이 문제였다.

1920년 이전까지 미국 가정에서는 의료비라는 게 별로 없었다. 응급실에서 하룻밤 지내고 나오면 쉽게 몇 달치 월급이 병원비로 날아가는 지금의 사태는 우주의 이야기처럼 거리가 먼 일이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특별히 병원비가 많이 들 일이 없었다.

1919년 일리노이 주 보고서를 보면 당시 질병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치료비가 아니라 결근으로 인한 수입 감소였다. 약값이나 의사왕진비 등 치료비는 몸져누워서 놓친 임금의 1/4 수준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온 보험이 질병보험이었다. 병으로 일을 못하게 될 경우 소득을 보장해주는 보험이었다.

하지만 일반 건강보험에는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서 보험사들은 장례 보험을 팔았다. ‘건강’같이 애매모호한 것 보다는 ‘죽음’이라는 확실한 것을 상품으로 다룬다는 것이었다. 당시 보험사들이 가장 많이 판 보험은 누군가 죽었을 때 장례비용을 보장해주는 장례보험이었다.

지금과 같은 건강보험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29년이었다. 달라스의 베일러 대학 병원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연 6달러의 보험료로 21일간의 입원을 보장해주는 플랜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블루 크로스였다.

의료기술이 차츰 발달,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는 일이 증가하면서 보험의 필요성이 떠오른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들은 시큰둥해서 그런 대중들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보험관계자는 병원비를 화장품 값에 비교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화장품에 쓰는 돈이 병원비로 나가는 돈보다 더 많다는 지적이었다. “화장품 사느라 한번에 1달러 여를 쓰면서도 비싸다는 생각을 못한다. 보험료는 한달에 50센트나 1달러 정도인데 그렇게 하면 평생 병원 입원비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 일찌감치 전국민 보험제를 만들었다면 지금같이 보험료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일은 막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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