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대한민국 빈 좌석
2010-03-10 (수) 12:00:00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4성 장군 출신인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 Haig, 85세)가 볼티모어 존스합킨스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간염 합병증으로 지난 2월 20일 타계했다. 1950년 6월 25일 당시 대위였던 알렉산더 헤이그 장관은 그날 ‘당직 사령’을 서면서 북한군의 남침 사실을 제일 먼저 맥아더 장군에게 보고한 사람이다. 그 후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과 중공군의 총공격으로 수천 명의 미군이 전사한 장진호 전투까지 육군대위로 참전해서 처절하게 전투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지난 3월2일 워싱턴 DC의 한 성당(Washington DC Basilica of the National Shrine of the Immaculate Conception)을 모 목사님이 운전하는 교회 밴을 타고 찾아 갔다.
1950년 한국 전쟁에 대위로 참전했던 헤이그 전 국무장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고별 예배를 하는 성당의 내부 규모에 놀랐다. 로마 베드로 성전 내부와 견줄만했다. 필자는 한미우호증진협의회 공동의장 자격으로 협의회 대표의장 일행과 함께 참석한 것이었다.
안내자의 인도로 본당을 한참 들어가니 거기에는 세계 주요 국가들의 좌석이 배정되어 있었다. 한국 좌석(Dedicate Seat Republic of Korea)이라고 표시된 세 줄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높은 자리라고 짐작 되는 좌석에 앉지 않고 세 번째 줄에 앉았다. 세계 각국의 외교관들과 정장을 한 별들이 번쩍이는 무관들이 자기 나라 표시에 따라 착석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대한민국의 대사관 외교관들이나 무관부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끝까지 좌석을 비운 채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워싱턴 6.25참전 유공자 회장도 불참하고 임기가 끝나서 그런지 미국 동부재향군인회장도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봉사하며 조국을 위한다고 하던 한인회장들조차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헤이그 장군은 1950년 한국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분이다. 그래서 고인이 된 그분을 더욱 고마워한다. 지정한 끝자리나마 채워준 한미우호증진협의회(회장 김택용 목사)가 헤이그 전 국무장관의 마지막 장례 예배에 참석해 한국을 대표해서 고인의 타계를 애도한 꼴이 됐다.
10일 전에 참전동지회장에게도 직접 알렸고 신문과 TV 뉴스에도 크게 보도됐는데 참전용사라 하면 못마땅하게 여겼던 좌익 정부도 아닌데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왜 참석을 안했을까?
2002년 한국에서는 6.25전쟁 기념행사도 못하게 해서 노구를 이끌고 여기 워싱턴 참전동지회 행사에 왔노라 하시며 알링턴에 소재했던 옛 우래옥에서 함께 기념식을 했던 백선엽 대장의 연설이 생각나기에 하는 말이다.
닉슨, 포드, 레이건 대통령 등 3개 공화당 행정부 시절 고위직을 연임했던 헤이그는 1988년 대통령선거 당시 공화당 후보 경선에 출마하며 대권도전에 나서기도 했으나 중도 하차했다. 6.25 한국전쟁 이후 헤이그는 리처드 닉슨 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거쳤으며, 워터게이트 사건이 발생한 뒤 백악관 비서실장직을 맡으며 사태 수습을 주도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독일 베를린 장벽에서 소련 고르바초프에게 이 장벽을 허물라고 연설한 밑바탕과 초석은 국무장관으로 있던 헤이그의 전략이며 동구 공산권을 무너뜨린 주역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나토(NATO)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됐으며, 1970년대 말까지 군생활을 계속하다가 레이건 정부에서 국무장관으로 임명됐다.
한때 헤이그와 마찰을 빚기도 했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이날 장례 예배에 참석해 “그는 늘 자신보다는 국가를 먼저 생각한 사람으로 국내외의 어려운 상황들을 용기와 재치로 이겨냈다”며 그의 업적을 높게 평가하는 애도의 조사를 했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고인의 명복을 주님께 기도드린다.
유흥주
한미자유연맹 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