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흐르는 세월

2010-02-2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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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국 은퇴목사

‘세월을 아끼라’는 교훈은 우리가 들을 때마다 ‘옳소’하며 동의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무거움을 느낀다. 그 까닭은 세월을 아끼는 방도가 너무 모호하기 때문이다. 돈은 쓰지 않고 모아두면 남아 있고 옷도 입지 않고 아껴두면 남아있다.
그러나 시간은 옷이나 돈처럼 아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시간이고, 해와 달처럼 지나가는 것이 시간이기에 우리는 시간을 세월이라고 부른다. 세월은 천지가 창조되던 때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이 끝날 때까지 흘러가는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시간은 우리가 쓰지 않고 아낀다고 서서 기다려 주지 않고 우리가 헤프게 쓴다고 빨리 달려가지도 않는다. 세월은 사람의 하는 행위와 관계없이 흘러간다. 언제나 변함없이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그런 세월을 어떻게 아끼라는 것인가 하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원인이다.
‘세월을 아끼라’는 교훈은 신약성경 에베소서 5장 16절에 있는 말씀이다. 신약성경의 원어는 옛 희랍인의 말 헬라어이다. 헬라어 원문에 이 말씀은 ‘엑싸고라조메노이 톤 카이론’이라고 되어 있다. 그 문장을 직역하면 ‘톤 카이론’(시간 혹은 기회)을 ‘엑싸고라조메노이’(구속 혹은 구입하다)라는 뜻이다. 그 말씀을 1930년대에 우리말로 번역하는 분들이 까다로운 직역을 피하고 한국에서 널리 통용하던 구절로 의역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 번역이 1937년에 출판된 신약성경 개정판에 들어가서 개신교의 많은 산자들이 오늘까지 널리 읽고 있다.
번역하는 분들의 본뜻은 원어의 의미를 새겨서 ‘흘러가는 세월을 헛되게 보내지 말고 값있게 사용하라’는 의미였음이 틀림없다. 그런 의미가 1930년대에는 ‘시간을 아끼라’는 금언으로 잘 통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이치와 논리를 따지며 살아가는 우리 마음에 ‘시간을 아끼라’는 말이 흡족하지 않고 무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 모호한 옛 번역을 바로잡기 위하여 1970년에 출판한 한국교회의 공동번역 성서에는 본문을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라고 고쳐 옮겼다.
흐르는 세월의 특징은 한 번 우리 앞에 왔다가 지나가는 데 있다. 우리는 편의상 세월을 과거, 미래, 현재의 셋으로 구분한다. 과거는 흘러서 지나간 시간이고 미래는 아직 우리에게 오지 않은 세월이고 현재는 우리가 지금 맞이하는 시간이다.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면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니까 쓸 수 없는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쓸 수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현재 뿐이다. 그런데 현재라는 시간은 과거와 미래가 엇갈리는 순간에 잠간 왔다가 지나가 버리는 극히 짧은 시간이다. 우리가 어영부영하는 동안에 흘러가 버리는 시간이 현재이다.
그 뿐 아니라 우리 심리 속에는 이상하게도 과거와 미래를 좋게 여기면서 현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에 할 일이 있으면 왜 그런지 모르지만 현재는 몸이 피곤하고 형편이 좋지 않다면서 다음으로 미루기가 일수이다.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우리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서 할 일을 아주 아니하며 지나가는 악습을 얻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지나가버린 과거에 집착하거나 아직 나타나지 않은 미래에 막연한 소망을 두지 말고 우리 앞에 다가온 현재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사용하라는 뜻이다. 흐르는 세월을 아끼는 것은 현재라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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