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어머니
2010-02-19 (금) 12:00:00
벌써 오래전일이라 정확한 년도는 생각이 안 난다. 하지만 내가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 2, 3학년 때였든 거 같다. 워낙에 개구쟁이라 많이 맞고 자랐지만 그날은 무슨 일로 더 많이 맞았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기억나는 걸 보면 아마 내가 잘못한 만큼 보다도 더 많이 맞았던 것이 억울해서 그렇지 않나 싶다.
그때는 체벌이라는 것이 학교나 가정에서 하나의 관행처럼 굳어져 있었기에 친구들 간에 많이 맞았던 얘기를 서로 자랑하듯이 얘기할 정도였다. 대개 뭐 잘못해서 맞을 때는 특별한 기준이 없이 그저 때리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매”가 결정되는데 때리고 난후에 흔히들 쉽게 “사랑의 매”라고 얘기들 했다.
하여간에 엄마한테 많이 맞고 난 후에 좀 억울하고 분해서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세상을 비관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가 점심 때 아니면 저녁때인 걸로 생각된다. 밥상을 가지고 들어온 엄마가 밥을 먹으라는데 아무리 내가 어렸었고 먹을 게 귀했던 시절이라 해도 사람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겠는가. 마침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형과 동생은 소리까지 내며 맛있게 먹는데 엄마의 재차 권유에도 내가 밥 먹는 걸 거절하자 엄마와 나와 약간에 말다툼이 다시 벌어졌다.
“먹보가 왜 밥을 안 먹냐,” “지금 생각 없다.” 그러자 엄마가 그랬다. “지금 나한테 맞았던 거 가지고 반항하는 거야?” 그야말로 일촉즉발이었다. 그래도 약이 오른 나는 “아니 엄마한테 맞은 거하고 지금 밥 안 먹는 거 하고 왜 ‘결부’시키느냐?”고 되물었다.
눈을 크게 뜬 엄마가 갑자기 일어나면서 이렇게 소리를 치셨다. “뭐 결부, 이게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만. 생각해서 밥 차려주니까 엄마한테 문자를 써.” 그 다음은 말 안 해도 아실 것이다.
지금 어른이 된 나이에도 일 년에 한번 쓸까말까 하는 “고품격”의 단어를 그 어린나이에 어떻게 썼는지 나도 모른다. 참고로 얘기하자면 지금도 “결”자로 시작되는 단어는 잘 안 쓴다. 우리친구들 얘기로는 그때 조금 더 맞았든가 아예 이런 일이 없었다면 지금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그 사랑스럽고 똑똑하고 매사가 분명했던 나의 엄마는 지금 치매 때문에 양로원에 계신다. 모든 걸 다 잊어버린 나의 엄마는 그래도 이 말썽 많던 둘째 아들을 기억하고 계셔서 내가 양로원을 방문했다가 오래 머물지 않고 금방 갈라치면 “얘! 벌써가니” 하시면서 아쉬워하신다.
“사랑하는 엄마 앞으로는 더욱더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엄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