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함께 사는 지혜

2010-02-17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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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주 워싱턴 문인회

요즘 신문·TV를 보면 이민사회 한국 단체들이 불행하게도 서로 반목 분리하며, 서로 비방하며 아전인수 격으로 전통을 내세우며 한인사회에 수치와 혼돈을 야기하는 일들을 종종 보면 내 자신이 이민사회의 한 사람으로 부끄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왜 서로 인내하며 진솔한 대화로 화합하고 함께 사는 지혜를 외면하는 지 정말 안타깝다.
그 원인은 모두 ‘내’가, ‘우리’가 하는 이기적인 아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라고 한 고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말이 참 철언(哲言)이라고 믿어진다.
독선보다 협력, 함께하는 힘이 얼마나 많은 생산력을 창출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천의 지혜가 없는 자는 지도 능력이 부족한 위인이요 파괴분자요 해당분자이다.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실패요 불신이요 악이다. 반면 함께 하는 삶은 성공이요 기쁨이요 행복이다.
소설가 하근찬씨의 데뷔작인 “수난 시대”라는 작품이 생각난다. 일제 때 강제징용에 끌려가서 팔 하나를 잃고 불편 속에 힘들게 살고 있던 아버지가, 6·25 동란에 참전했다가 제대하고 돌아오는 아들을 마중하기 위하여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읍내 기차 정거장으로 갔다.
거기서 아들이 전상으로 한쪽 다리가 잘리고 목발 짚은 병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병신 부자의 조우는 한탄과 절망, 그야말로 망연자실이었다.
앞이 캄캄했다. 대상 없이 치미는 아버지의 울화, 아들의 착잡한 심정, 내일의 삶을 생각하면서 느껴오는 심도 깊은 불안,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뒤엉킨 복잡한 감정의 교감을 막걸리 한잔에 담아 나누고 집을 향해 굽이굽이 거친 시골 길로 무거운 발 거름을 옮겼다.
어느덧 외나무 다리가 가로놓인 냇가에 당도한 아들은 새삼스럽고 구체적인 또 하나의 좌절과 자괴감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목발을 짚은 외다리로는 도저히 이 나무 다리를 건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절망과 당혹감에 낙담한 아들의 표정을 읽은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아들 앞에 자기의 등을 내민다.
아들은 몇 번 사양하다 아버지의 등에 업힌다. 오늘따라 아버지의 등이 따사롭다는 느낌을 갖는다. 부자는 무사히 외나무 다리를 건넜다.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팔을 잃고 다리가 잘린 이들 병신 부자는 숙명적으로 무엇인가 부족하고 불만인 우리의 현재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병신 부자는 서로의 부족을 보안하여 무사히 외나무 다리를 건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상대와의 관계개선은 서로의 용서와 화해로 시작된다. 문을 열지 않으면 들어 갈 수 없다.
함께 사는 지혜는 사랑과 인내의 공동체를 통해서 생산적 극대화를 창출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워싱턴 지역에 실로 경사요 함께 사는 지혜의 본으로 두 단체가 하나로 통합하여 분열의 이민사회에 귀감이 된 희소식이 있었다.
지난 12월 12일 미주시문학회(권귀순)와 워싱턴문인회(이영묵)가 ‘워싱턴문인회’로 통합된 사실이다. 특히 말(글쓰는 일) 많은 사람들의 통합이 쉬운 일이 아니었으나 서로 만나고 협의하고 6개월 여 끈기 있는 노력의 결과로 안다. 이 날 많은 사람들이 아낌없는 박수로 문인회의 통합을 축하했다. 분명 워싱턴문인회는 앞으로 더 발전적 문예창작 활동에 배가의 업적을 이룰 것으로 믿는다. 지식인들의 밝고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성경에도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는 말이 있다. 곧 서로 돕고 양보하며 함께 살라는 뜻으로 안다.
이제부터라도 서로 양보의 미덕을 지켜가며 화합하며 통합하며 함께 사는 지혜를 터득하여 밝고 건전한 아름다운 이민사회를 지향하여 우리의 2세들에게 함께 사는 지혜를 유산으로 남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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