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너무 많이 왔다. 그 눈을 치우고 차를 빼서 나간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전기마저 나갔다. 웅크리고 여러 겹의 옷을 입고 벌벌 떨면서 집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자니 국민학교 시절 장작에다 조개탄으로 피우던 어린 시절의 교실 난로 생각이 난다. 그러다가 얼마 전 내가 글속에서 국민학교라고 쓴 것을 초등학교라고 고처야 할 것 아니냐는 어떤 분의 글이 문뜩 떠오른다.
그러자니 초등학교, 소학교 하면서 이 생각, 저 생각이 난다.
우선 떠오르는 것이 나의 형님 거실에 걸려있는 족자다. 형님이 어린 시절 남산에 있는 일제 천황의 신궁에서 서도 대회가 있었는데, 그 서도 대회에서 특등인지 일등인지 했고 그 붓글씨를 어머님이 1.4 후퇴 때에서 보물단지처럼 지니다가 미국에 형님에게 보낸 것이다.
글씨는 모두 한문으로 냇물 속에 작은 돌조각이란 뜻의 ‘천중소석’이라고 쓰고 경성 혜화소학교 1년 7세 이O묵이라 썼다.
내가 햇수로 계산해 보니 1940년이다. 그러면 언제부터 국민학교라고 썼나 하고 이곳저곳 뒤져보니 소위 대동아 전쟁이 시작된 1941년부터 국민학교라고 불리게 된 것을 알게 됐다. 아하, 그러면 일제 36년 중 국민학교라고 불린 것이 4년 밖에 안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국민이란 단어의 양면이 떠오르고 쓴 미소가 지어진다.
본래 국민이란 단어는 명치유신 때 일본인들이 만든 단어이다. 몇 백 년을 지방정권 하에서 살면서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가려도 그곳 영주(다이묘)의 허가증이 있어야 할 만큼 머리에 박힌 지방 소속감 때문에 명치유신 때 전 일본인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서 국민이란 단어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국민이란 단어가 일제하에서 일본국민과의 차별하며 저항과 독립에 여간 중요한 단어가 아니었고, 그렇게 쓰다 보니 완전히 한국인들의 단어로 정착되었다.
중국과 북한, 대만 모두 인민 여러분으로 연설을 시작한다, 미국 등 서방세계는 시민 여러분으로 시작하고 그런대 오직 일본과 한국만이 연설할 때 국민여러분으로 시작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헌법에 국민의 3대 의무 하면서,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 교육의 의무라고 국민이란 단어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문맹들이 많았던 시절 국민과 의무교육이란 두 단어를 묶어 국민학교라고 불리는 것은 해방정국에 적절한 단어였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서 일제 4년간의 국민학교라는 단어를 계승했다기보다는, 국민, 의무교육, 학교라는 3 뜻이 함축된 국민학교라는 단어가 시대의 요구로 신생국가로서 필요에 의해서 썼다고 생각한다.
그런대 이러한 필요에 의해서 해방 이후 50년간 국민학교라는 이름을 써 왔음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으로 일제시대 것이라면 그 어느 것이라도 과잉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쓰면 친일, 반민족으로 몰려는 생각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만일 나의 의심대로라면 그것이야 말로 국수주의적, 극우적 생각일 것이다
나도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는 것을 찬성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이제 의무교육 운운하면서 초등교육 6년 받아야 한다는 시대는 이제 아니고, 의미도 없어졌고, 세계화 시대에 국민 이라는 단어가 학교 편제에 없어져야 했기에 찬성하는 것이지 일제잔재 청산 운운은 아니다. 그리고 국민학교라는 단어는 송충이처럼 징그러운 단어기 아니라 그런대로 나에게는 그리운 추억 속에 단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