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겨울철 어르신들의 산책

2010-01-29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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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희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어르신들의 산책은 반드시 동반자와 함께 할 것을 권장하고 싶다. 우리는 셋째 외손자 출산 예정일에 맞추어 이곳 시애틀 공항에 도착하니 잔뜩 찌푸린 날씨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소리도 없이 보슬보슬 내리고 있다.
약속된 장소에 만삭의 배를 안고 두 아들과 나란히 서있는 딸의 모습을 보니 무척 힘들어 보인다. 내가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도와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도와주고 가야겠다 다짐하는 순간 어느새 두 손자가 달려와 덥석 안긴다.
갓 낳아서 돌보아준 사랑스러운 것들이 벌써 이렇게 컸으니 대견스럽기 그지없다. 큰 손자는 벌써 6살이다. 할머니 우리 집에 왔어 하는 바람에 부랴부랴 서둘러 내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셋째가 11월 3일 아침에 건강한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사위의 전화를 받고 모두 기뻐하며 오후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사자성어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있듯이 이곳 조깅코스에 푹 빠져버린 남편이 정신을 잃고 길에서 쓰러졌다. 그 이는 대수술 후 1년이 넘도록 하루 30분 정도밖에 걷지 못했는데 아름다운 풍경에 도취되었는지 매일 기록갱신 이라며 자랑한다. 나는 한편으로 불안한 생각이 들어 어느 날 뉴욕에서 새벽조깅 홀로 나가셨다가 쓰러져 수술대에 올랐던 6촌 형님, 오랫동안 당뇨로 투병 중에 홀로 조깅하던 중 넘어져 턱밑을 여섯 바늘이나 꿰맨 친구 남편 이야기 등 운동도 무리는 절대로 금해야 한다는 말을 한 다음날 12월 28일이였다.
평소처럼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내 등을 두 번 콕콕 찌르고는 혼자 나가 미안하다는 표시로 애교 섞인 웃음에 손까지 살래살래 흔들며 슬며시 나갔다. 그 때부터 3시간이 흘렀을까? 딸과 둘이서 오늘은 3시간 돌파를 외치시려고 기를 쓰시나 보다 했더니 딩동댕, 딩동댕 자꾸 초인종이 울린다. 딸이 나가면서 항상 열고 들어오셨는데? 딴사람인가? 문을 여니 벽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 큰일 난 것 같았단다. 조그만 음성으로 넘어졌어 한마디 하고는 바닥에 누우셨다. 한참 후에 이야기를 하신다. 눈을 뜨니 하늘이 보이고 고개를 돌려보니 길이란다. 그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어서려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다. 본래 허리에 문제가 있었던 지라 그 곳에 충격이 가해진 모양이다.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서서 돌아보니 휴대폰은 5미터 정도에 떨어져 있고 모자는 반대쪽에 있는 것을 간신히 집어 들고 집 방향으로 걷는데 그렇게 먼 거리 같았다고….
후에 그 자리를 가보니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고 걸려 넘어질 만한 그 무엇이 전혀 없었다. 머리카락도 없는 뒤통수에 주먹만 한 피멍이 든 것으로 보아 현기증으로 쓰러진 후 머리가 땅에 닺지 않았을까? 병원에 가기를 마다하여 집에서 여러 가지로 자가 치료를 하니 지금은 평상시 움직임과 별 차이가 없다. 이번 일로 하나님께서 새 생명 주심을 크게 감사드리며 지금까지 무관심으로 소, 닭 보듯 살아 온 우리에게 서로 보살피며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드리고 살아야겠다. 특히 어르신들 외출, 산책, 조깅 시에는 반드시 동반자와 함께 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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