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상동의 카메라 토크 - 카메라의 눈

2010-01-27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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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벌써 스물 대여섯 밤이 훌쩍 지났다. 올해도 별 대책 없이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갈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에 책장 한 구석에 꽂아놓았던 새해 다이어리를 열어보며 계획들을 적어본다. 매년 이 맘 때쯤이면 큰 결심도 해보고 계획도 거창하게 세워보지만 12월이 가까워지면 일년의 온 세월을 다 그냥 보낸 것 같은 아쉬움과 후회를 거듭하며 살아간다. 매년 연초에 첫 번째로 꼽아놓는 대작을 만들겠다는 이 꿈은 언제나 이루어지려는지?

가깝게 지내는 선배 한 분이 평화로운 은퇴생활을 즐기다 고행(?)의 길로 들어섰다. 사진을 시작하신 것이다. 여행 다니며 작은 카메라로 재미있게 잘 찍던 스냅사진에 재미를 느껴 큰 카메라로 더 좋은 사진을 기대하며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어보니 옛날 작은 카메라로 찍던 사진이 아니다. 기능은 더 복잡해지고 점점 더 어려워진다. 들인 만큼의 돈 값을 해주리라 믿고 거금을 투자해서 장만한 카메라가 마음먹은 대로 찍히지 않아 무척 상심하시며 “보이는 대로 찍히지 않는다”고 속상해 하신다. 이것은 선배님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진은 보이는 대로 찍힌다”는 말도 안 되는 이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진 촬영에 어려움을 느낀다. 사진은 촬영자의 눈으로 보이는 대로 찍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카메라가 카메라의 눈으로 본 것이 찍히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같은 이야기 같지만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사람의 눈은 뷰 파인더를 통하여 찍을 대상을 입체감을 가지고 보지만 카메라는 평면으로 본다. 입체로 본 사물이 평면의 사진이 되어 나오는데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촬영자는 사진을 찍을 때 뷰 파인더를 통하여 눈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눈으로 보면서 생각하고 귀와 코와 두뇌까지 사용하며 분위기까지 곁들인다. 카메라의 눈은 지극히 평범한 저녁노을을 보고 있지만 옆에 아름다운 연인과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며 촬영하는 사람의 눈이 보는 저녁노을은 절대 평범하지 않다. 그 분위기에 취해 하염없이 셔터를 눌러대고, 기대에 잔뜩 부풀어 사진을 현상해 보지만 거기에는 카메라의 눈으로 본 평범한 사진들만이 가득 할 것이다. 그 순간 느꼈던 감동과 함께 찍은 그 사진은 유감스럽지만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그저 내 마음 속에만 걸리는 대작일 뿐이다.

과학을 이해하고 예술의 감각을 터득해야 하는 사진은 과학이며 예술이다. 세상이 좋아져 무조건 셔터만 누르면 그림은 만들어지는 세상이지만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니다.

기계가 만들어낼 사진을 나의 눈과 머리로 상상하지 말자. 카메라는 눈은 있으나 머리는 없다. 셔터를 누르기 전 입체적으로 보고 있는 이 장면이 평면으로 바뀌고 이 상황과 아무 관계가 없는 제삼자가 감정이 배제된 상태에서 사진을 볼 때의 느낌을 유추해낼 수 있다면 그 사진은 성공의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기계의 조작과 촬영에 관한 기계적 기술의 습득도 중요하지만 좋은 사진을 꿈꾸는 사진가라면 카메라의 눈과 나의 눈을 일치시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많은 사진가들의 새해 소망 중에는 대작 또는 명작의 꿈이 있을 것이다. 좋은 작품과 좋은 사진은 꼭 고가의 카메라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의 눈과 나의 눈이 일치되는 순간부터 명작의 꿈은 서서히 나에게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김상동 / 남가주사진작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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