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실한 사랑

2010-01-23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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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희중앙결혼정보센터

결혼을 하고 삼년이 지난 어느 봄날 남편의 제의에 따라 남편의 고향 공주를 방문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며 말로만 듣던 교육 도시 공주라는 곳을 찾았다. 서울에서 자란 나로서는 별로 신기할 것도 주목할 것도 없는 삼 면이 야산으로 둘러 싸여진 조그마한 도시였다. 남편은 무엇인지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여기가 그 유명한 금강! 이 금강을 타고 내려가면 부여, 고란사까지도 간다는 것이며 무슨 행사가 있을 때면 이 거리를 따라 시내 한 바퀴를 행진하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 얘기하며, 조금은 흥분까지 한 듯한 어조로 열심히 설명을 해주던 생각이 난다.
고향! 고향은 이렇게 좋은 곳인가 보다 생각하며 여러 곳을 구경하고 산선공원이라는 산에 올라 보니 공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백제의 옛 고도답게 운치도, 아름다움도 있어 보였으며 옆으로 흐르는 금강 물은 역사의 산 증인인양, 도도히 흐르고 있었다.
금강도 강으로 남아있지만 조그마한 시냇물 같아서 이곳에서 초등학교 6학년 가을에 수학여행으로 120명 정도의 아이들이 한 배를 타고 부여 고란사 및 백마강까지 다녀왔다는 그말이 어느 전설 속에 나오는 말같이 들렸다. 변하는 게 자연이요, 변화해서 진화해야 생존할 수 있는 현실을 여기에서 다시 느꼈다.
그리 높지도 않은, 그리 넓지도 않은 산성공원. 가파른 절벽이 있는 곳도 없고, 그리 위험스러운 낭떨어지도 없다. 주위에 산들 또한 그렇다. 특별히 높은 산도, 툭 튀어나온 산도 없다. 그저 가까이에서 보면 어느 집 정원과도 같은 아름다운 풍경. 어느 곳에서 사슴 한 마리가 튀어나올 듯한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런 자연 속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니 자연히 마음이 온순할 수밖에 없고 우정이 좋고 사랑에 약한 많은 사람들을 배출했나 보다.
공주 사람뿐만 아니라 충청도 사람들은 착하다고들 말한다. 대학 2학년 어느 추운 겨울 토요일 영화를 보러 가려고 광화문 ‘P’ 극장 앞에서 오후 2시에 약속을 했다. 그는 시간을 지켜 나갔는데 그날따라 어찌나 추운지 팔, 다리가 다 얼어붙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도 나를 만난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극장 앞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단다. 물론 다방이나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으면 좋았었겠지만 주머니 사정이 좋지 못해 극장 앞에서 약속을 했단다. 처음에는 마음이 설레고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며 손을 비벼가며 열심히 기다리는데 삼십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나오겠지 하고 한참 있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지나갔더란다. 이쯤 되니 이제는 발이 시려운지 손이 차가운지 별 감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오겠지 하고 열심히 기다리다 보니 두 시간 반이 지났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조금 마음이 달라지려고 하는데 저 만큼에서 웃음을 띠우며 걸어오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백 오십분을 기다리던 그 지루하고 춥던 마음은 다 녹아내리고 심장이 다시 쿵쿵 뛰는 것을 느꼈고 손 발의 차가움은 전혀 느끼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약속 시간을 2시간 30분이나 늦게 나갔으니 정말 못된 사람이었다. 그와 결혼한 이후 나도 그의 철저한 시간 관념을 배워 지금은 시간 잘 지키는 사람으로 손꼽힌다.
사랑은 역시 기다림이다. 사랑하며 기다리며, 기다리며 사랑하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값진 사랑이다. 자주적인 생각으로 사랑을 했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랑을 했으며 착한 생각으로 선한 사랑을 했으니 이것이 성실한 사랑이요 , 우리에게는 진실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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