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의 종소리

2009-12-1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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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해가 세월의 저편으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마지막 한 달 세모의 의미는 언제나 아쉬우면서도 또한 무거운 것 같다. 사회적으로 유난히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올해를 보내며 마무리하는 심정은 착잡하지만 한편으로는 겸허히 반성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각 쇼핑센터마다 오색찬란한 전등과 징글벨 소리가 들려오는 12월. 마음이 풍성해지고 때로는 들뜨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지속되는 경제 한파 속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이제는 우리 주위에 경제위기로 인한 역경과 사회에 그늘에서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그래서 세모는 어려운 이웃에게 물질과 사랑을 베푸는 계절이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여기저기서 정겹게 들려오는 종소리, 바로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자들이 흔드는 사랑의 종소리다.
한 해가 저물어감을 알리는 은은한 종소리, 그 종소리는 별빛 같은 천사가 되어 은빛 날개를 빛내며 날아가는 듯 했다.
세모(歲暮)는 내 가진 것이 아무리 작아도 이웃사랑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은 성탄절을 맞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 아닌가. 지난달 <아름다운 여인들 모임> 자선냄비 봉사 릴레이에 참여했다.
회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2명씩 짝을 이루어 1-2 시간씩 종을 치며 추위도 잊고 환한 모습으로 기부자를 맞았다. 미국인 엄마들이 자녀들의 고사리 손에 돈을 쥐어주며 냄비에 넣는 모습은 우리들을 흐뭇하게 했다.
또한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 우리와 함께 해주고 도와주어서 고맙다 ‘ 는 인사를 받을 때는 기쁨의 힘이 생겼다.
미국의 자원봉사 인구는 연간 1억명이 넘는다고 한다. 자원봉사자들의 정신은 위기 때 빛을 발휘한다. 9.11 사태 직후 넘쳐난 자원봉사를 보면 알수 있지 않은가. 우리는 척박한 이민의 삶이지만 작은 봉사의 삶은 인생을 배우고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고 나무는 땅을 떠나 살수 없듯이 인간을 사랑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다.
아가페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며 아름다운 삶의 원천이 되며, 생명과 영혼을 빛내준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이제는 살아온 세월보다 남은 세월의 허망함이 느껴지는 것이 세모라는 분위기 때문인가. 천년도 한순간이라고 생각하니 우리가 살아 있고 살아가는 생이 얼마나 짧은가 새삼 느껴진다. 한번 밖에 없는 인생, 인간은 기다림의 지혜를 터득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 속에서 감사와 행복이 찾아오지 않는가. 세모의 문턱에서 상념에 잠겨본다.


채수희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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