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부엌 싱크대가 막혀 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팔을 걷어 올리고 싱크대 구멍 안을 이리저리 짚어보며 음식물 찌꺼기를 주워내었다. 막힌 것을 뚫는 케미컬을 넣고 한참 기다렸다가 다시 물을 틀어보고 모터를 때려 보아도 물은 내려가지 않았다. 이럴 때 남편이 곁에 있었으면 금방 고쳐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아빠가 오시면 고쳐주겠지 하던 톰이가 내가 분주히 왔다 갔다 하며 퉁탕거리는 소리에 공부하던 방에서 나오며 물었다. “엄마, 싱크대가 막혔어요?” “그래,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 저녁을 해야 하는데.” 뭔가를 생각하던 톰이는 팔을 걷어 올리고 싱크대 구멍 안으로 손을 넣어 이리저리 뒤지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몇 번을 힘들여 끄집어 낸 찌꺼기 속에는 닭고기 껍질과 오렌지 씨 네댓 새가 나왔다. “엄마, 이런 것들은 싱크대 모터에 갈리지 않아요.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야 되요.” 싱크대 밑바닥에 드러누워 무엇을 찾는지 모터 밑을 만진 후에 스위치를 올렸다. 윙 하는 소리를 내며 모터가 돌기 시작하면서 싱크대에 가득 찼던 물은 삽시간에 시원하게 내려가 버렸다. 나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고 주르르 흐르는 눈물도 싱크대 속으로 함께 내려가고 있었다.
오늘따라 톰이가 정말 대견해 보였고 부주의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남편으로부터 꾸중을 받는 말같이 받아들여졌다. 남편이 우리 곁을 떠난 언제부터 중학생인 톰이는 나의 아들이자 가장으로서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빠가 보이지 않는 어느 날로부터 톰이는 너무도 많이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의 고생은 생각도 하지 않았던 톰이였다. 방에서 공부하고 있던 톰이가 시장에서 돌아오는 엄마를 보고 급히 맨발로 뛰어나왔다. “엄마. 이렇게 무거운 것이 있으면 나를 부르지 않고.” 야채와 과일이 담긴 무거운 박스를 덜렁 받아 들고 부엌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엄마, 커피 한잔 할래요?”하면서 물을 끓이기 시작하였다. 또 한 번 눈물을 감추려고 애쓰는 엄마의 어깨를 만져주는 톰이의 손이 너무도 따뜻하였다.
다섯 살 아래인 톰이의 여동생 수선이 엄마가 사온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평을 했다. 50불만 주면 자신이 알아서 골라 사겠다고 한다. 내가 사온 옷이 수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못마땅했었고 딸에게 돈 50불을 줄 수 없는 나의 처지가 너무 초라해져 버렸다. “그래, 지금은 돈이 없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어”라고 타일렀다. 평소 몇 푼 못주는 용돈에도 별 불평없이 지내는 딸에게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너무 부족하였다. 울보가 된 나는 조용히 방에 들어가 성모님 앞에 앉아 있었다.
그 날 밤 톰이는 또 한 번 나를 울렸다. 방에서 동생과 주고받는 이야기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톰이는 동생을 타이르며 우리 집 형편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빠도 없이 고생하는 엄마를 우리가 생각해야지.” 아직도 어린 톰이가 동생을 철이 없다며 타이르는 소리와 “오빠, 알았어. 미안해”하는 수선의 말에 나의 가슴은 터질듯이 뛰기 시작하였다.
톰이는 앞으로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대학 영문과에 지망하였다. 가방을 싸들고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는 날, 수선과 나도 학교까지 같이 갔었다. 처음으로 엄마 곁을 떠나 오래 있게 되는 시간이었다. 톰이는 “엄마, 운전 조심해 가시고 집에 무슨 일이 있으면 즉시 연락해요.” 하며 손을 흔들었다. 차가 막 떠나려는데 “엄마, 잠깐” 하며 톰이가 뛰어왔었다. “엄마, 건강해야 되요. 그리고 수선, 엄마 잘 돌봐 드려야 해”하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저녁노을이 물들기 시작하는 고갯길을 넘으며 오늘같이 행복한 날이 나에게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육아수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자식으로부터 받고 있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 했지만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는 톰이와 착한 딸 수선과 함께하는 엄마의 마음을 나누어 갖고자 하는 마음에 한 자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