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 박희례(캘리포니아 한의대 교수)
2009-10-28 (수) 12:00:00
나는 정리정돈을 잘 못한다. 작년에 끝난 박사학위 논문 서류들이 한쪽 벽을 다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방이 발 디딜 틈이 없다. 바쁘다는 핑계로 일년이 다 되도록 그 자리에 한 폭의 정물화로 차지하고 있다. 몇 날을 벼루다가 정리를 시작했다.
오래된 책갈피에서 기억에도 없는 나의 초등학교 2학년 생활 통지표를 발견했다. 우수수로 시작하는 어릴 적 성적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담임 선생님의 코멘트가 재미있다. “공부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고, 청소에 열의를 보이고 있음.” 아니! 초등학교 2학년이 얼마나 열심히 청소를 했기에 이런 말씀을 적어 놓으셨나? 웃음이 터져 나와 혼자 한참을 웃었다. “음, 임 희례가 소시적에는 청소도 잘했군. 비록 지금은 쓰레기 속에서 살고 있지만.” 나중에 이 얘기를 들은 남편이 한마디 던진 소리다.
세 아이들의 어릴 적 노트나 소지품을 큰아이가 서른이 되도록 아직도 끌어 안고 있으니 짐이 많을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은 버리라고 하지만, 심리적 이유기를 벗어나지 못한 엄마는, 일년에 서너 번 밖에 만나지 못하는 아이들 바라보듯 그 물건들을 끼고 있다. 장남의 소지품을 정리하다 철균이의 성적표를 발견했다. 나와 똑 같은 초등학교 2학년 성적표다. “청소를 열심히 도와줌. 좀 더 차분하면 장래가 촉망됨.” “오! 마이 갓!” 마치 감전이라도 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이게 뭐야. 엄마와 아들이 똑 같이 청소에 열심이라고? 이 선생님들께서는 청소를 초등학생들이 마스터해야 되는 제일의 덕목이라고 중요하게 생각하셨나?”
이십 여 년이 지난 지금, 어쩌다 반찬이라도 만들어 혼자 사는 아들 집을 방문하면, 여기 저기 옷 가지들과 책들로 방 하나 가득 늘어져 있다. 청소라도 해주고 오려고 하면 그냥 두라고 만지지도 못하게 한다. 치워 놓으면 나중에 찾기가 힘들다나. “그래, 네가 옛날같이 청소나 열심히 했으면 지금처럼 의젓한 의사가 됐겠냐? 쓰레기 더미에서 살아도 분수를 알고, 아픈 사람들 고쳐 주고, 앞으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면 되지.” 나도 정리를 못하고 있으니 아들에게 잔소리도 못하고 돌아 온다.
앞으로 바쁘더라도 시간을 내어 청소를 해야겠다. 물건들 하나마다 그 물건을 샀을 당시의 기억 과 추억이 있어 미련이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사는 공간은 제한되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