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송미경(주부)

2009-10-09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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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원봉사의 즐거움

학부모라면 학기 초에 자원봉사의 문제를 놓고 고민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돕는 것부터 시작해서 학교 행사 때 일손을 돕는 것, 현장학습에 운전하는 것, 교실에 딸린 작은 꽃밭을 가꾸는 것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기만 하다.

수업료가 없는 공립학교 뿐만 아니라 엄연히 비싼 돈 내고 다니는 preschool에서도 오라 가라 하는 일이 어찌나 많은지 달력에 표시를 해 놓지 않으면 놓치기 일쑤이다.

어느 아이의 경우에나 나는 나 여기 왔소 하는 정도로 일했다. 일은 부지런히 하면서도 의무감 외에 누가, 특히 교사가 나 좀 안 봐주나 하는 생각이 늘 있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주눅이 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다른 미국 학부형들이 영어를 나보다 더 잘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그렇게 봉사를 즐길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존중하고 격려해주는 말과 솜씨도 보통이 아니지만 남에게 보이려고 무리해서 일하는 법도 없었다.


또한 교사와도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되 결코 내 아이 좀 더 봐달라는 의도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이타적인 태도 때문에 그들은 내 아이, 남의 아이의 구분을 넘어선 전체 학교, 지역 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런 자연스러움은 그들이 어릴 때부터 해 온 봉사 활동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 같다. 반면 이러한 사회적 기반이 빈약한 우리로서는 어쩐지 봉사활동이 어색하기만 하다.

좌충우돌 자원봉사 경력 10년 여 만에 이번에 5학년 짜리 아들의 학교에서 간 2박 3일간의 현장학습에서는 정말 즐거운 봉사 활동을 경험했다. 아이의 초등학교 마지막 여행이 될 것 같아 돌도 안된 막내와 막 초등학생이 된 딸까지 데려가 전기와 난방 없는 숙소에서 같이 자고 먹고 했다. 한 반 아이들 스무 명에 어른 열 셋이 붙었으니 일거리는 엄청났다.

그런데 옷이 다 젖도록 접시를 닦고 우리 집도 1년에 한번도 안 하는 수준의 대청소를 하는 동안 마음에 전에 없던 기쁨이 밀려왔다. 일은 힘들건만 나 역시 현장학습 자체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자원해서 봉사하는데 10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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