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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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넘고 물 건너며… ‘아리랑’ 생각이 절로

2009-09-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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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 국토 종단기 <24> 평창을 지나며

심마니는 어떤 사람일까. 최복규씨가 전화를 받았다. 새벽에 산에 올랐다가 집에 가는 중인데 15분 후면 도착할 것이라고 한다. 팔 자형 코밑수염이 첫 눈에 들어오는 50대 초반의 건장한 남자가 차에서 내린다. 마당 여기저기 산에서 가져온 상황버섯이랑 고목들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 차 한 잔을 나누며 얘기를 시작했다.


산삼 캐는 심마니의 거친 삶 엿보고
산촌마을 고달픈 생활에는 연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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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이 뛰어난 평창은 각종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하늘을 날며 자연을 만끽하는 패러글라이딩 회원들. <평창군 제공>



“사람들이 나를 심마니라 부르는데, 옛날에는 ‘채삼꾼’이라 불렸고, 캐낸 산삼은 국가에 상납했다”고 말문을 튼다. 집이 가난해서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고, 어릴 적부터 나무를 하러 다녔기 때문에 일찍 산에 익숙하게 되었는데, 심마니가 되어 본격적으로 산을 타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부터라고 했다.

산삼은 우리나라 태백산맥 부근의 것을 최상품으로 친다고 한다. 요즘 중국산 장뇌가 산삼으로 둔갑하여 거래되고 있으니 조심해야 하고, 모양을 따지지 말라고 당부한다. 산삼이 자라는 위치, 일조량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을 가지기 때문이란다. 가격은 무얼 보고 결정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래서 전문가가 필요한 것 아니냐며 가볍게 웃는다.

“연 수입이 얼마쯤 되냐”고 묻자 그저 먹고 살 정도라고 한다. 지금까지 꽤 많은 산삼을 캤으며, 생명을 살려낸 경우도 여러 번이라고 했다. 현재 평창에 30여명의 심마니가 있으며, 10월 말경 ‘평창 산삼축제’가 열리는데 올해 7년째라고 했다.

방안을 둘러보니 산에서 찍어온 재미있는 사진이랑 본인이 썼다는 시 한 편이 벽에 걸려 있다.

남들은 정상을 오르기 위해 / 산을 오른다지만 / 나는 내려가기 위해 / 산을 오른다 / 내게 산행은 등산이 아니라 / 하산이다 / ...... / 어느새 / 하산할 나이가 다가온다.

가족을 물었더니 큰아들은 교대를 졸업하여 순위고사 준비 중이고, 둘째는 군에 갔단다. 마누라는 집을 나가 버렸다고 한숨을 쉰다. 이유를 물으려다 그만뒀다. 험산을 가볍게 넘나드는, 산삼을 곁에 두고 사는 남정네를 당해낼 여인이 흔치 않을 성싶다. 과유불급,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했던가. 세상사 넘쳐도 모자라도 탈이다.

얘기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났다. 다시 걷기 시작한다.


주진마을 입구에 앙증맞게 예쁜 꽃 지게가 세워져 있다. 뱃재고개를 넘어가는데 적설량 측정기가 보인다. 눈이 많은 지역임을 알겠다. 멀지 않은 곳에 양평스키장이 있다고 한다.

가평 산촌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인부 몇이서 한담을 하기에 요즘 일당이 얼마쯤이냐고 묻자, 점심 먹여주고 여자는 4만원 남자는 6만원을 받는데, 일거리가 없어 공치는 날이 많다고 한다. 사람들이 먹고사는 일로 고민을 하건 말건 냇물은 흘러간다.

다리 난간에 “하늘에는 송전탑, 땅에는 똥물공장, 더 이상은 안 된다 폐기물 처리장” 배너가 걸려 있다. 각 지역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 쉽지 않겠다. 이 물이 정선으로 흐른다고 했다.

정선하면 ‘정선아리랑’이 생각난다.

아우라지 지장구 아저씨 나 좀 건네주오/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아리랑은 우리 민족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불려지는 민족의 노래이다. 아리랑의 어원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필자는 최근 명지대학 노남섭 교수로부터 좀 독특한 의견을 들었다.

아리랑은 ‘아리’와 ‘랑’의 복합어인데, 아리는 ‘아리아리’ ‘아리송’처럼 확실히 있기는 한데 분명치 않은 무엇이고, 랑은 ‘신랑’ ‘화랑’처럼 최고의 것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그래서 아리랑은 “드러낼 수는 없지만 가장 고귀하고 아름답고 신성한 이상향에 대한 간절한 바람, 그것을 향해 ‘함께’ 가자는 뜻”이라는 해석이다. 독특한 해석에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전, 노 교수가 몽고에 가서 현지인들과 어울려 노래방에 간 적이 있는데, 아리랑 노래를 부르자 몽고인이 깜짝 놀라며, “어떻게 그 노래를 아느냐”고 묻더란다. 알고 보니 언어만 달랐지 몽고에도 아리랑 곡조가 있더라는 것이다. 아리랑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의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필자도 아리랑을 즐겨 부른다. 3대 아리랑인 강원도 정선아리랑, 호남의 진도아리랑, 영남의 밀양아리랑 중, 원한다면 몇 가락쯤은 당장 뽑을 수도 있다. 아리랑을 찾아 저 물 따라 정선까지 흘러가고 싶지만,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길을 재촉하는데, 한 남자가 들판에서 민들레 뿌리를 캐고 있다. 항암치료에 특효가 있는데 농장에 옮겨심기 위해서라고 한다.

봉평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곽춘식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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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마니 생활 15년째라는 최복규씨는 산삼은 위치 등에 따라 모양이 가지각색이며, 태백산맥에서 자란 것이 최상품에 속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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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마을 입구에 서 있는 앙증맞은 꽃 지게.


<정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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