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박희례(가주 한의대 교수)

2009-09-2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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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추석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곳에서는 본국에서처럼 연휴가 아니라 명절 느낌이 전혀 나지 않지만, 조상님들께 차례는 올려야 되니 매년 간단하지만 정성스럽게 차례상을 준비한다.

이곳에 부모 형제가 모두 함께 이민 오신 분들은 외롭지 않겠지만, 우리처럼 친척도 하나 없는 사람은, 고국을 떠나 사는 것 중에 가장 아쉬운 것이, 우리 고유의 명절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는 함께 살고 있어서, 정성스럽게 차린 차례상 앞에서 조상님께 절을 올리고 음식을 나누어 먹으니 저절로 교육이 되었는데, 아이들이 자라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으니, 연휴도 아닌데 추석 명절을 지내러 오라고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추수 감사절에는 모두 집으로 돌아와서 더 명절같이 느껴진다. 이것이 남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서글픔이다.

추석이나 추수 감사절은, 그 동안 신세 졌던 분들이나 조상님들께 감사 드리고, 또 흩어졌던 가족들이 며칠 동안이라도 즐거운 만남을 갖는다는데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우리도 몇 년 전까지는, 막내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에 이민 와서, 영어 한마디 못하고 학교에 다닐 때, 친절하게 친구가 되어 준, 에디네 할머니 집에서 생전 처음으로 칠면조 고기를 먹어 보았고, 그 후 매년 그 댁에서 추수 감사절을 보내는 것이 연례 행사가 되었다. 최근에는 형님 같은 좋은 이웃 사촌을 만나, 추수 감사절을 함께 보내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다.


16년을 미국에 살면서, 남편이 칠면조를 먹지 않아, 아직도 집에서 칠면조를 구워 보지 못했고, 추석에 토란국을 먹고 있으니, 한국 사람은 어디에 있으나 우리 것을 버릴 수 없는 것 같다.

올 추석에는 서울에서 할머니 간병 차 온 막내 아들 덕분에 덜 외롭게 보내게 되어 기쁘다. 이번 추석은 다행히도 토요일이라, 나머지 두 아이들도 모두 집으로 올 예정이라 몇 년 만에 온 식구가 모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한쪽 문을 닫으시면 다른 쪽 문을 열어 주시니, 어머님의 병환으로 한달 동안 우울했던 우리 집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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