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송미경(주부)

2009-08-14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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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의 빈곤

어린 시절의 놀이의 기억을 잘 보존하고 있지 못하면 아이들을 돌볼 때 의외로 난감해질 때가 많다. 네 살짜리 딸 아이가 털실을 가져와서는 손가락을 걸어 cat’s cradle을 만들자고 왔을 때 나는 도무지 방법이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남편에게 밀어놓았더니 남편은 아이의 시선을 완전 집중시킨 채 복잡다단한 기술을 선보인다. 놀이가 세대를 건너가는 순간이다.

자연스럽게 다른 놀이로 화제가 옮겨간다. “당신 공기 몇 년 했어?” “초등학교 6학년 때 했지.” 공기 놀이의 급수가 년수로 올라간다는 것조차 내가 기억을 못하니 고무줄 놀이, 다방구, 땅따먹기는 많이 했어 라고 항변해 본들 믿음이 안가는 모양이다.

그나마 제법 많이 뛰어 놀았던 내가 놀 줄 모를진대 우리 아이들 세대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사라진 것은 오래 전 이야기고 그나마 과외 공부가 느슨해 사정이 좀 나은 이 곳 미국에서도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무리를 형성하고 놀이를 주도해가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아무개야, 놀자” 라는 창문 밖의 함성들은 무한경쟁의 이 시대에는 듣기 힘든 소리인 것이다.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을 먹이고 가르치느라 밤낮 수고하고 있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또래 놀이 집단을 상실한 아이들에게 부모는 놀이 상대 알선이라는 또 하나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에 의해 짜여진 공간과 시간표 안에서 놀면서 서로 얼굴 한번 제대로 보는 일 없이 스크린만 죽어라 쳐다본다. 자식 교육이 집집마다 우상이 되다 보니 부모는 아이들을 ‘관리’하게 되고 그 결과 아이들의 자발적인 놀이 공간은 더 위축된다.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부모랑 친구랑 그야말로 재미있게 놀기를 원한다. 한국에 다녀온 아홉 살 이웃 아이가 꼽은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놀이동산과 관광이 아니라 삼촌, 이모들과 한 묵찌빠 놀이였다고 한다. 우리 아이도 아빠를 기억하면서 배운 대로 cat’s cradle을 자기 아이에게 전수할 날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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