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남리사(재정설계사)

2009-08-1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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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해할 수 없는 관계

최근 한국뉴스를 보면 평택 쌍용자동차 농성장면이 많이 보도된다. 회사측이 생산직근로자를 해고하려하자, 노동자들은 ‘같이 살자’며 목숨을 건 투쟁에 돌입했고, 회사측은 조기파산신청을 하면서 공권력을 동원하여 강경진압에 들어갔다. 천만다행으로 타결을 보게 되었지만 지켜보는 사람들마저 가슴 졸이는 광경이었다.

내가 한국에 있던 때에도 노사분규가 끊이지않았고, 힘없이 공권력에 맞서는 노동자측에 마음으로 나마 지지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냉정하게보면 회사측의 이윤창출의 욕구와 대비되는, 가진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 사회 생산구조의 모순관계라고나 할까. 자본가가 이익을 남기지 못한다면 살아남을수 없으니 원가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해야하고, 노동자는 노동력을 팔아야만 살아갈수 있으니 일할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것 또한 당연하니 양자간은 어느 한쪽도 양보할수 없는 관계임이 분명하다.

미국에 사시는 많은 한국분들이 소규모사업체를 운영하고 계신다. 비록 소규모이긴 하지만 이 사회의 기본모순관계가 반영되어 고용주과 피고용인들이 갈등대립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고용주들은 피고용인들을 최대한 이용해서 이윤을 극대화하고자하는 목적을 향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치달리다가, 이에 반발하는 피고용인들이 노동착취니 인권유린이니 하며 비난을 하는걸 목격할수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양자가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 구도가 은폐된 채, 인간들사이의 개인적 갈등의 형태로 나타나 서로를 적대시하고 끝없는 싸움의 구렁속으로 빠져버리게 되곤 한다.

쌍용노동자의 애절한 외침과 그 가족들의 안타까운 눈물, 그리고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진압에 차출되어 폭력을 휘두르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젊은이들을 지켜보다 답답한 마음에 하소연처럼 써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정말 이 둘 사이의 화해점은 찾을수 없는 걸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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