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폴 손 칼럼

2009-08-05 (수) 12:00:00
크게 작게

▶ 촌지 (寸志)

<폴 손>

불경기 속에서도 바람을 안타는 곳이 있다면, 대학 입시 준비 학원이다. 행여나 자식이 잘못되거나, 공부를 못해 대학 진학이 어렵게 되면 부모는 죄책감을 가진다. 그래서, 있는 돈 없는 돈 긁어모아 SAT 학원에라도 보내고자 하는 부모의 애틋한 마음에,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한국인 부모의 교육열은 세계가 알아준다.

게다가 한걸음 더 나아가서, 담임 선생님께 성의 표시라며 금일봉을 드리기도 한다. 촌지라는 말은 “마음 속의 조그마한 뜻”이라는 말로서, 자녀들의 담임 선생님께 드리는 금일봉으로 널리 알려진 말이다. 너무 오래된 관행으로 이 촌지가 일으키는 부작용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도 드물다. 대통령 뿐만 아니라, 두명의 검찰 총장 후보까지 위장 전입하는 것을 보면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과도한 열정은 국가의 장래를 위협하고 있다. 위장 전입 뿐만 아니라, 촌지는 안드렸을까?


1975년 12월 어느 날짜의 시카고 한국일보에 난 기사에 의하면 (지금 이 칼럼을 쓸 줄 알았으면 그 신문을 잘 보관했어야 했지만), 시카고 교외의 어느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에게 엄마는 100불이 든 봉투 하나를 담임 선생님께 드리라고 전했다. 크리스마스도 되고 해서 드리는 감사의 촌지였었다.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그냥 감사의 표시라고 하겠지만, 이 촌지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다. 담임 선생님은 그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그 촌지에 대해 물었다. 엄마는 별 것 아니니 그냥 쓰시라고 했다. 엄마의 돌려 받지 않으려는 완강한 뜻에 선생님은 백불로 학용품을 사서 그 다음날 학급의 학생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며 아무개 부모님이 공부 잘하라고 선물하는 것이라 했다.

미국 학교의 교과목에는 “도덕”이라는 과목이 없다. 한국에서는 그 과목이 있다. 그 과목을 가르치는 선생이 부도덕하다면, 학생들은 선생으로부터 배울 것이 없다. 뇌물을 받은 사람은 마음이 약해져서 뇌물을 바친 사람의 뜻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그러다 한 두번의 경험이 쌓이게 되면 면역이 생겨 당연시 여기게되고, 심지어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다. 이것이 부패라는 고질병으로 바뀌게 된다.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은 수학 교사였었는데, 근무가 끝나도 숙직실에서 바둑을 두다가 밤늦게 귀가 하시곤 했었다. 과외 수업을 부탁하러 댁으로 찾아오는 부모들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런가하면, 촌지가 많이 들어오는 지역의 학교로 발령 받기 위해 손쓰는 선생도 봤고, 같은 학교 내에서도 촌지 수입이 괜찮은 학급으로 발령받기 위해 교장 선생님께 손쓰는 선생도 봤다. 초등학교로 치면 일학년과 육학년 학생들의 부모들이 처음 학교 시작과 중학교 진학 관계로 촌지를 많이 전한다고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저소득층 가정은 육성 회비가 면제되는데, 담임 선생은 육성 회비 청구서를 가난한 부모들에게도 보내기도 한다. 교육열에 젖은 가난한 부모가 자기 자녀가 소외되지 않도록 육성 회비를 내면, 어디로 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대학 시절 가정 교사를 했었는데, 매일 그 학생의 부모는 먹을 것, 마실 것을 방 안에 갖다 놓으셨다. 먹고 마시다 언제 공부를 가르치겠는가? 매일 먹고 마시는 버릇이 들어있을 때, 이 부모님이 하루라도 음식을 안 갖다놓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사람은 자기 성찰과 훈련이 중요하다. 훗날 그 학생이 대학에 들어간 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우리 집 물에는 독이 없으니 한 잔 드시라”고 하셨다.

우리 기성 세대가 언행일치를 실행하지 못하면, 우리는 후손에게 남길 아무런 정신적인 유산이 없다. 조그만 촌지를 주고 받는 관행을 통해 부패를 물려줄 수는 없지않은가? 전교조와 학부모가 고민해야하는 대목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