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도전하지 못한 비겁함은 더 큰 치욕이다.” -로버트 H 슐러-
친구 H는 외모도 예쁘고, 전문직으로 일도 잘한다. 30이 훌쩍넘은 미혼인 그녀에게 어떤 남성이 좋냐고 묻자, 그녀는 기다렸다는듯 큰눈을 더욱 크게 뜨고 단숨에 대답했다. “시원한 이목구비와 큰키, 거기에 어깨와 복근이 아주 예뻐야돼”.
순간 나는 H가 너무 어린아이 같아 피식 웃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그녀야말로 나이에 따른 사회적 통념에 세뇌되지 않은, 아주 진솔하고, 자신을 잘 파악하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어떤 사람을 선호하는지 잘 생각도 안해보고, ”진실하고 지혜롭고 열정적인 사람”등으로 보수적이고 재미없는 답변을 했을것같다.
여류소설가 S씨의 소설에보면”실수하며 방황하며 젊음의 홍역을 치르지 않는 삶은 얄밉다”라고 씌여있는데, 내 삶은 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얄미운것임이 분명하다.
인생 어느 시기에 한번쯤은 얄밉게 살지말고, 로버트 슐러가 주장하는대로 도전하며 돈키호테처럼 살아보고도 싶다. 오늘은 꽉짜인 바쁜 일정때문에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는데, 갑자기 오후 2시쯤 인터넷으로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가까운 산을 찾아내어 무작정 차를 몰았다. 계속울리는 전화를 받으며 Uvas Canyon에 가까이 오자, 전화기 신호가 일순간에 끊겼다. 갑자기 세상과 단절된듯한 불안감과 해방감이 뒤섞인 미묘한 설레임으로 등산로에 들어섰다.
검은정장에 검은구두가 채 5분도 안되어 흙먼지에 온통 하얗게 되었다. 가파른 흙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넘어서니, 계곡의 작은 나무다리를 지나 이어진 좁은 오솔길에는 햇빛이 나뭇가지사이로 빗줄기처럼 내려쏟아지고, 길에는 온통 가을색 낙엽들이 켜켜로 쌓여있어 정말 예뻤다. 예쁜 잎들을 몇개 줍다가 옆에 선 나무를 자세히 보니, 나무 겉에 딱딱한 고동색 껍질이 반쯤 벗겨져 버리고, 그 단단한 껍질이 벗겨진 곳에는 선명한 자주색 색종이가 돌돌 말린듯 얇은 속 껍질이 또 벗어지고 있었다. 자주색 속껍질 안쪽은 연 초록색으로 매끄러운 모습이었다. 이렇게 이 나무는 겉 꺼플을 벗으며 성장을 계속하는것 같다.
나도 이 나무들처럼 딱딱하게 울타리치고 있는 모든 장식들을 걷어내고, 작은 너울까지도 모두 벗어버리고, 거리낌없이 매끄러운 모습으로 언제나 내 가슴속의 진실만을 생각하며, 또 진실만을 말하며, 세월이 흐르고 또 오랜 세월이 흘러가도, 이 세상의 통념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이세상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