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생각하다 / 김인숙(목회자 아내)
2009-07-15 (수) 12:00:00
한국에 계신 시어머니께서 연전에 여성의 창 두번째 칼럼에 실렸던 “결혼식 보다 기쁜 장례식” 의 글을 읽으시고, “얘야 너 정말 결혼식때보다 장례식이 더 좋았니? 네 마음이 진짜인지 모르지만 남들이 오해할라” 그 말씀인 즉, 남편 세상 떠나 보내고 뭐가 그리 신나고 좋니? 이런 말씀이셨다. 비단 우리 어머니 뿐 아니다. 여러가지 현실적인 일들을 수습하고, 일상생활로 돌아오며 사람들을 만날때 한결같이 “사모님, 씩씩해서 보기 좋아요, 정말 잘 참아 내시는 것 같아요, 신앙으로 잘 이겨내시네요 ” 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 말의 뜻을 나는 무엇보다 잘 안다. 나의 외모는 물론 성격이 처진 편이 아니라 금방 모든 슬픔을 잊고 현실 생활을 잘 적응하는 것으로 비춰졌을 것으로 본다. 물론 또 그래야 했기에 어느 누구를 만나도 굳이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도 순간 순간 가장 참기 어렵고 드러내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면 “자살”에 대한 유혹이다. 죽음이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내내 떨쳐 버릴 수 없다. 자살은 생명의 주관자를 모독하는 행위이며, 또 신앙인으로서 사탄이 주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문득 문득 떠오르게 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무슨 일이 내게 일어나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하루라도 빨리 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은 아마도 가까운 사람을 잃어 본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어리석은 생각과 함께 초대교회때 예수님과 함께 생활했던 사도들의 순교와 역사속에 무수한 순교자들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의 죽음을 내 가장 사랑하는 자의 죽음으로 체험한 사람들을 돌아 본다.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 남편의 사랑을 알고 나서야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남편의 죽음을 통해서야 겨우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며 천국을 소망할까. 어리석은 나여 죽음을 그렇게 가볍게 그리고 헛되게 생각한 것이 한없이 부끄럽기까지 하지만, 죽는 날 수를 주관하고 계신 그분이 갖고 있는 남겨진 나를 향한 뜻이 무엇일까 오늘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