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칼럼

2009-06-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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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숫자놀음
 
 19세기 프랑스의 해부학자 폴 브로카는 두개골의 크기와 무게를 측정하여 남성이 여성보다, 백인이 흑인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했다. 온갖 숫자가 동원되어 설득력 있게 작성된 그의 이론은 지난 200년 동안 과학적, 객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결과 정치적, 사회적 파장을 가져왔다. 성차별, 인종차별, 노예제도의 정당화가 그것이다.
 1981년,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브로카의 두개골과 신장의 비례 무시, 편파적 표본 추출, 계측자체의 비정확성을 지적하고 불평등을 합리화시킨 이론에 철퇴를 내렸다. “코끼리 두뇌가 인간의 것보다 크다 해서 코끼리가 인간보다 똑똑하다고 볼 수 없다”는 한마디가 브로카 통계의 허구성을 찌른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관측시키기 위해 자료를 임의로 추가, 삭제한 어제의 브로카 숫자놀음이 오늘날의 대학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클렘슨 대학의 캐서린 와트 연구원은 자신의 대학이 US뉴스 & 월드 리포트가 발표하는 대학순위를 높이기 위해 자료를 조작했다고 최근 폭로했다. 연구대학 20위 등급을 목표로, 가을학기에 20~25명 학생이 듣는 수업을 19명으로 줄여 나머지 학생을 50명 이상 듣는 강의로 돌리고, 서류상 교수의 봉급을 2만 달러씩 올리고, 졸업생 기부율을 높이기 위해 일년에 5 달러씩 기부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신입생 유지율을 높이기 위해 대기자 명단에 오른 지원자를 봄학기에 입학시키는 편법등을 사용했다. 또한, 캠퍼스를 방문하는 흑인 운동선수를 포섭하려고 지역 흑인학생들을 매수, 흑인 재학생이 많은 것처럼 꾸미기도 했다. 봄학기가 되면 다시 콩나물 강의실이 되고, 일부 교수는 잘려 나가며, 소규모 강의가 취소되는 등,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실정을 가을학기 통계만을 사용하는 USS 뉴스 순위 가림은 포착하지 못한다.
 대학의 숫자놀음은 한 클렘슨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졸업생들로부터 받은 한해의 기부금을 5년으로 늘려 동창생 기부율을 높인 아비온 대학, 거금을 들여 유명교수를 스카웃하는 방법으로 교수자원 분야에서 1994년 50등에서 2002년 1등으로 뛰어오른 유펜, 대학 등수를 올리면 총장에게 보너스 1만 달러를 수여하는 애리조나 주립대, 파트타임 강사, 은퇴 교수까지 합해서 국립 엔지니어 아카데미 회원이 34명(실제는 22명)이라는 허위보고로 공과 대학원의 등수를 올린 USC등, 대학의 순위경쟁 뒷전에서 벌어지는 비리사항을 일일이 나열하면 아마도 할리웃 연예계의 염문 리스트 분량과 비슷할 것이다.
 사실, 순위를 올리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대학의 운영자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타 대학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마케팅 자체에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대학의 연구업적, 재학생의 만족도, 졸업생의 사회기여도로 승부를 내기보다 얄팍한 수단을 동원하여 삼류잡지가 매기는 순위만 올려 학생을 끌어드리려는 행위는 지원자를 기만하는 상술이다. 그것에 현혹되어, 지원자의 독특성을 무시한 채 오직 대학순위 하나로 지원대학을 결정하는 것은, 순위를 발표하는 잡지사의 도산을 방지해 주고, 일부 대학의 기득권 획득 전쟁에 용병으로 팔려가며, 대학의 서열화에 동참하는 것이다.
 진정한 교육의 효과는 인간이 성숙한 단계, 즉,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는 40대가 되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때가 되어서도 대학순위에 객관성이 있다고 믿고 고집하는 것은, 인간과 교육의 가치를 숫자로 환산하는 사회와 등수 조작에 능란한 대학에서 가르치는 “편법101” 강의를 깡그리 암기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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