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사에 의하면 배우자의 죽음이 정서적으로 가장 큰 위기를 가져다 준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는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 자식의 죽음을 최고의 정신적 스트레스로 꼽고 있다. 어느 슬픔이 더 크던 분명 인생을 살면서 가장 큰 고통의 때를 맞고 있는 것을 나라고 숨길 수는 없다.
특히 고향을 떠나 먼 타국에서 맞는 배우자와의 사별은 더 크다. 우리 가족은 사실 미국으로 오면서 더욱 따뜻하고 오붓하게 지냈다. 친,인척없는 낯선 이국 땅에서 의지할 곳은 오로지 가족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내며 보낸 유학생활이나 이민목회를 하며 겪는 어려운 상황들 가운데에서도 내 자식, 내 남편과 함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위안이었다.
최근 성경의 룻기를 읽으면서 나의 슬픔과 비교해 본다. 타국에서 남편에게 매우 의존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나오미에게 남편의 죽음은 감당하기 어려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또 다시 남편 대신 의지해 온 두 아들을 먼저 보냈을 때, 보통 사람 같으면 아마도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타국에서 서로 의지가 되었던 사랑하는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에서 오는 상실감과 고통은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이와 함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생각해 본다. 베드로 역시 가장 의지하고 믿었던 스승 예수, 온갖 기적을 베푸는 예수님을 옆에서 직접 보아 왔고, 그로 인해 천국의 자리 한 몫까지 자신있게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베드로에게 예수의 죽음은 남편 잃은 나오미나 나에게 닥친 슬픔만큼, 아니 그 보다 더 컸을 것이다. 오죽하면 죽음을 앞둔 예수님이 철부지 같던 베드로를 두고 가는 것이 안타까워 “네가 날 사랑하느냐” 하며 세 번이나 다짐하며 물었을까.
그러나 믿었던 사람, 의지했던 사람이 떠나면 더 강해지는 법, 베드로의 놀라운 변신을 성경과 역사속에서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베드로 앞에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대상이 아니어서 인지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는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남겨진 우리를 인간적으로 걱정을 많이 하셔서 우리에게 헬퍼(Helper, 성령)을 보내시켔다고 약속하신 것이라고 본다.
한편으로 나에게 닥친 큰 고난과 고통에 대한 가치를 생각해 본다. 가장 큰 슬픔중에 하나인 배우자 사별을 경험하며, 다른 사람들은 갖지 못한 나만의 것이라는 귀중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것에서 얻는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자랑과 기쁨을 갖게 된다.
다윗이 사랑하는 피붙이 아들을 죽음을 확인하고 훌훌 털고 일어나 위대한 정치가가 되었듯, 또 무식한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 후 더 굳센 믿음과 사명으로 순교를 당할 때까지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한 것들이 어찌 사람의 힘으로만 할 수 있었겠는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