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방초 오월의 신록은 푸르릅니다. 5월은 가정의 달로 삶에 묻혀 소홀했던 가정을 뒤돌아보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정의 소중함을 느끼고 깨닫고 다듬어야 할 이때에 고국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는 뉴스에 국민적 슬픔에 있는 와중에 마지막 여성독립 운동가 전월선 여사께서 서거하셨다는 뉴스를 접하고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끼며 삼가 고 전월선 여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여사께서는 1923년 경북 영월에서 탄생하셔서 1939년 중국 귀주성 구이린 조선 의용대에 입대해 일본군의 정보 수집을 하다가 유일하게 여성으로서 김구 선생의 집무를 돌보면서 김구 선생의 총애를 받다가 김구 선생의 권유로 같은 독립투사인 첩보대장 김근수 씨와 결혼을 하셨습니다.
두 부부는 국가관과 정체성이 투철해 결혼 후에도 여사께서는 김구 선생의 서사로 일했고 김근수 옹께서는 엿장수로 변장을 하고 첩보 대장의 업무 수행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여사께서는 현지에서 첫 아들 김원웅(전 국회 외교통상분과위원장)을 출생 하면서 잠시 집에서 산후 조리와 어린 애기를 돌보면서 남편의 독립 운동을 돕게 되었습니다. 독립운동의 급박한 상황에서 신혼의 단꿈도 누리지 못하고 생활은 궁핍했지만 불만이나 불행한 마음보다는 어서 해방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꿈의 전부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남편 김근수 옹께서 미국 정보원으로부터 지원받은 돈을 조국에 있는 독립운동 단체에 전달하라는 김구 선생의 명을 받고 많은 양의 돈가방을 짊어지고 떠나려는 남편에게 아기도 있는데 돈을 조금만 놓고 가면 안 되느냐고 말할 때 남편 김근수 옹께서 “산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오. 이 돈이 어떤 돈인데 손을 대…” 했으나 떠나는 남편에게 당신이 위험한 일을 하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 애기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당장 먹을 끼니가 없는데도 투정과 원망스러운 표정보다는 위험한 업무 수행을 위해 떠나는 남편에게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있어도 하나님이 주신 우리의 귀한 생명 그리고 아들 원웅이의 생명까지 엮어서 위험과 좌절,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생명을 포기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해방을 쟁취할 수 있고 고국에서 부모형제를 만날 수 있다고 원대한 꿈을 이야기 하셨다고 합니다.
사선을 넘나들면서도 죽음보다 힘든 역경을 겪으면서도 때로는 죽음보다 삶이 훨씬 힘들고 어려웠지만 끈질기게 버티면서 투쟁한 결과로 해방을 맞이한 그때의 감격은 무엇으로 측량할 수 있을까.
여사의 서거를 계기로 본국의 정치가들도 여사의 일대기를 살펴보면서 성숙된 정치인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적어도 공과 사를 구분하는….
어느 날 갑자기 일본의 패망으로 겨레의 숙원인 해방을 맞이했지만 김근수 옹과 전월선 여사께서는 정치판의 회오리 속에 정의가 협잡에 위협받는 상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남편 김근수 옹께서는 건국 훈장을 받으셨으며 동작동 국립묘지에 모셨고 전월선 여사께서도 건국 훈장 애족장을 받으셨으며 대전 국립 현충원에 모시게 된다고 합니다. 온 국민이 전월선 여사의 삼가 명복을 간절히 빌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