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햄릿』(Hamlet)에서, 주인공 햄릿은 왕이었던 아버지가 숙부에게 독살 당하고, 어머니는 그 숙부와 재혼하는 기구한 운명의 덴마크 왕자이다.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모든 사실을 알고 난 후 사람들 앞에서 미친 척 하며 수수께끼 같은 행동을 한다. 햄릿의 숙부였던 현 왕은 햄릿의 행동에 의구심을 품고, 그 원인을 알아내고자 로젠크랜츠(Rosencrantz, 로스)와 길덴스턴(Guildenstern, 길)이라는 햄릿의 친구들을 궁으로 부른다.
로스와 길은 왕의 명으로 궁에서 햄릿을 감시하게 되는데, 햄릿의 아버지를 독살한 현 왕은 햄릿마저 영국으로 보내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로스와 길은 이런 계획을 모른 채, 왕이 건네 준 ‘햄릿이 도착하면 즉시 처형하라.’는 영국 왕에게 보내는 국서를 가지고, 햄릿을 호위하여 영국으로 가게 된다.
음모를 눈치챈 햄릿은 친구들이 자기를 배신하고 약삭빠르게 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생각하여, 영국으로 가는 도중, 자신을 죽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대신 로스와 길을 처형하라는 내용의 편지로 바꿔치기 한다. 결국 로스와 길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햄릿 대신 처형당하고 만다.
나는 이 작품에서 햄릿도 불쌍하지만, 그의 친구들인 로스와 길에게도 눈길이 간다. 왜냐하면 그들은 절대 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들은 그저 왕의 소환 명령을 받고 저항없이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인데,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죽음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제어할 수 없는 세력에 의해 무기력하게 희생당한 존재들’이다.
이들과 상황은 달라도, ‘제어할 수 없는 세력에 의해 희생’되는 또 다른 로스와 길을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미국에 사는 우리 같은 소수민족 출신자들은 더욱 그렇게 될 여지가 크다. 예를 들면, 어린 아이를 태우고 가다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한국계 수지 김씨가 그렇고, 또 자신의 집에서 가족의 요청으로 출동한 경찰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우울증을 앓고 있던 조셉 한씨의 경우가 그렇다. 특히 수지 김씨의 사건은, 물론 속도위반으로 제지하는 경찰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그녀의 잘못도 크지만, 그것이 아이가 타고 있는 차를 향해 총을 발사하여 엄마의 목숨을 빼앗을 정도의 잘못인가 하는 생각과, 그녀가 만약 백인이었어도 그렇게 희생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사건이었다.
이런 일들을 접하면서, 나는 외형상 백인이 될 수 없는 우리 자신도 위의 희생자들과 같은 또 다른 로스와 길이 될 수 있음을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