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가 시작된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또 한학기가 거의 지나가며 여름계획을 세운다. 가만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보니 처음시작이 힘들었지 적응기간을 잘 졸업하고 나면 무엇에든 가속도가 붙어 쉽게 너무 잘지내는것 같다. 다시여름이오면 또 그렇게 적응기간을 갖는 지혜로운 엄마의 아이들은 구월 새학기에는, 적응못하고 우는아이 슬픔과 걱정이 가득찬 또래에게 자신있게 눈물도 닦아주고 책도 나눠 읽을 것이며 챙겨주겠지 하며 자신에차있던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지어본다.
부모와 떨어져야하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때론 전쟁터와 흡사할만큼 그처럼 애처로왔던가 새삼스럽다. 가을 새학기에 들어 오기전, 대부분 아이들은 여름동안 2주나 4주정도 혹은 6주 등록하고 적응 연습기간을 갖는다. 그런적응 기간을 갖지 못한 아이들은 대부분 아니 영락없이 울고 불고, 부모 역시 훈련이 되지 않아 발걸음을 떼 놓지 못하기도 하고 여러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의 (?)눈길을 받게 된다.
내 아이 막내도 대학에 들어가 수업전 첫 일주일동안 적응 기간을 갖을때는 수다도 많이 떨더니만 언제부턴가 세상이 이처럼 경이롭고 넓으며 또 험하기도 하며 만만치 않음을 스스로 알게 되면서 기가 꺽이고 자아가 깨지는 맛을보며 다종앓이를 한것으로 안다 . 아마도 그 때가 그 아이의 대학 적응기간이였던것 같다. 당당하고 명랑한 모습이 보고싶었는데...
벌써 힘든가 보네 하면서 혼자 해결해 나아가야 할 아이자신의 몫이니 강하고 겸손한 아이로 자리잡게 되게 되길 항상 두손을 모을 뿐이였다. 격어야 할 아픔과 고민이라면 어여 격어라, 그러면서 너의 집을 하나하나 곱고 아름답게 다듬으며 창문도 두루 만들며 견고하게 지어가는 것을 보여주거라 하며 내심 나도 마음의 창을 두루 열어놓고 적응기간을 애타하며 함께 갖었었다.
그때마다 얼굴 마주치면, 나보다 훨씬 인생선배이며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Sue가 빈둥지 신드롬까지 거론하며 ‘내아이도 그랬지 난 다 겪었어 그리고 난 다 알아’ 하면서 살며시 날 힘주어 안아준다.
어린아이가 적응기간이 필요하듯 내아이도 적응 기간이 새로운 환경에선 필요했나 보다. 가정, 학교, 교회 직장 모든 생활에서도 서로 적응 기간이 필요하듯 우린 언제나 바뀌어진 새로운 환경속에서 척척 바로 100% 껴마추지 못한다. 그러는 동안 시행착오와 깨달음의 적응 기간이 만료되면 드디어 틀을 잡아가는 것이겠지 싶다.
엄마나 아빠를 다시 만날거라는 확신이 그들에게 희미하거나 전혀 없기에 아이들이 처음 얼마간 적응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 지친 하루 끝자락쯤에 엄마 아빠가 나를 만나러 꼭 온다는 확신이 드는 그시간이 오기까지는 그 아이들의 불안정한 심리는 계속 될터인데, 나는 내 아이 같이 귀한 그 조그마한 아이들이 그 신뢰를 갖게 하는데 조금 도와줄 뿐이며 엄마의 마음을 베풀뿐이다. 우리는 연인, 친구사이에 새로운 가족, 이웃사이에 또는 저 천국을 향한 우리의 적응기간은 얼마나 걸리며 언제까지일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여성의 창’에 적응기간은 3개월, 적응되면 그때서야 아쉬움과 기쁨이 교차할 것이며 내 스스로에게 들려준 즐거운 대화도 그쯤에서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