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결혼식 만큼 기쁜 장례식 / 김인숙(목회자 아내)

2009-05-1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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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창

미국 생활 약 13년, 그간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지만 가까운 분의 장례식을 참석해 본 적이 없었다. 가족의 장례식이라면 17년전 친정 아버지가 돌아 가셨을때와, 3년전 친정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이다. 아버지 장례식은 기독교식으로 전통적인 한국식 장례절차였고, 어머니때는 안타깝게도 참석하지를 못했다. 지난 3월 먼 타국에서, 그것도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 남편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략 미국의 장례문화를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장례식전에 가족에게 먼저 고인의 시신을 보게 했다. 사망 소식을 듣고 5일만에 처음 남편의 시신을 본 것이다. 그 전까지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웠으나 정작 시신을 보고 나니 마음은 오히려 담담했다.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이구나. 싸늘한 시신은 감정도 없고, 움직이지도 없는 한낱 마네킹의 인형처럼 보였다. 내 감정에 전혀 와 닿지가 않은 것이 정말 이상할 정도였다. 그로부터 장례식까지는 4일 정도가 남았다. 식의 순서를 대충 전해 듣고 잠을 못 이루며 조사를 준비했다. 남편에 대하여 무엇을 말할까, 무엇을 알릴까, 한창 젊은 나이에 간 사람을 그리워 하고, 표현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슬픔을 전해야 할까. 나와 함께 추모사를 준비하는 대학 3년인 큰 딸아이도 많이 고민을 하는 것 같다. 3,4일 동안 예전의 추억들과 기억들을 최대한 되 살렸다. 잊어버리면 안되지. 우리가 그때 어땠었나.

준비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에게 잘 몰랐던 우리 남편을 어떻게 자랑할까에 촛점이 맞추어졌다. 남편 자랑에 아무리 못난이가 되어도 좋다. 이날만은 남편 최대의 날이다. 그리고 가장 가까웠던 내가 바로 주인공이다 라는 생각과 모든 사람들에게 다 밝히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그는 분명 더 좋은 곳으로 옮기워 졌다는 확신과 함께 힘이 솟고, 그날이 기다려 지고, 내 마음은 기쁨으로 넘쳤다. 정말 아름답게 세상을 살다간 사람. 떠난 사람 그리워 하고 슬퍼하기 보다 진정 남편이 이 세상을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를 알리고 싶었다.


장례식 날은 기대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자리를 메웠다. 생각보다 길어진 조사를 읽어 내리는 동안 마음은 더욱 굳세졌고 만일 저 분들이 슬프다면 내가 위로를 해 주고 싶어졌다. 더 이상 이별을 아쉬워하는 죽음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남편의 모습을 기억하는 그 분들을 정말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었다. 열마디, 백마디 위로의 말보다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고, 좋은 곳에서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위로 하셨다. “너무 웃지 말어 신랑 벌떡 일어 날라” 그래 내가 이렇게 웃어 다시 일어 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일어 나지 못한들 내가 왜 기쁘지 아니할까.

한국에서라면 장례식을 어떻게 준비했을까 궁금해 진다. 그리고 23년전 결혼식때도 내가 이렇게 기뻤을까 기억을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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