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김인숙(목회자 아내)

2009-05-0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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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목회자의 죽음

나는 최근 49세에 세상을 떠나 보낸 한 목회자의 아내이다. 목회자의 죽음을 바라보는 세상적인 시각은 다양하다. 특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경우 그가 어떻게 죽었는가는 세인의 초관심사이다. 아파서 병을 앓다가 돌아가셨는지, 교통사고로 급사를 했는지, 또 다른 어떤 예기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 사망했는지, 어떤 모습으로 돌아 가셨는지, 당시 시신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등등… 솔직히 나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청천벽력,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자 마자 제일 떠오른 의문은 교통사고일까, 누구한테 혹은 무엇에게 큰 해를 입었는가, 그렇다면 시신은 온전한 모습이었을까… 이에 대한 자세한 답변들을 당시 함께 한 목사님들에게 가장 먼저 듣고 싶었던 반면에, 또한 자세히 듣는 것을 두려워 한 질문이기도 했다.

나도 그랬듯이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위와 같은 동일한 질문들을 해 온다. 그러나 남편이 세상을 등질 당시 함께 있지 못한 상태라 “왜, 어떻하다가 돌아가셨냐”라고 한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할 말이 없다. 크리스챤, 그것도 목회자의 아내이니까 그냥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부르셨어요” 그들이 보기에 거룩한 모습(?)으로 이 말 한마디 밖에 해줄 수 없다. “아니 그래도 한참 일할 나이인데, 아프신 것도 아닌데…, 능력있으신 분인데, 아깝기도 해라, 왜 왜 왜…” 믿는 자이건 안 믿는 자이건 나의 대답을 들은 그들이 나의 대답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판단할른지는 모른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붙여서, “우리 목사님은 이러 이러하게 정말 아름다운 곳에서, 아무런 사고없이, 곱게 하나님 곁으로 가셨어요” 라고 표현한들 그들이 젊은 목회자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나 그들의 판단에 더 이상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님을 안다. 궁금해 하는 분들을 이해 시키기 위해 굳이 돌아 가신 경위를 사람의 말로 설명하려 애쓴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세상을 끝으로 아는 우리는 보통 죽음을 두려워 한다. 그리고 곧 그 죽음을 죄와 연관시킨다. 하나님을 믿건, 안 믿건 적어도 인간 평균 수명을 다 하고 죽지 않는 이상 죄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 어떻게 돌아 가셨는가에 따라 죄의 중차도를 매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나약한 모습은 바로 성경에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죽음에게 그 권세를 부여하여서 사망을 그렇게도 비통한 것”으로 만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고전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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