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수잔 김(피아노 반주자)

2009-04-24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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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건없는 사랑

“잘 놀았어? 어이구 예뻐라.” 집에 들어설때 가장 먼저 달려 나오는 두마리의 강아지에게 우리 가족이 하는말이다. 몇해전에 우리집에 두 마리의 강아지가 생겼다.

동물이라면 질색하는 내게 딸아이는 늘 강아지를 키우자고 조르곤 했다. 그럴때마다 끄덕도 안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이 벌어졌다.

딸이 어디서 얻어 왔는지 간절한 눈빛으로 하얗게 생긴 예쁜 강아지를 안고 들어 오는게 아닌가. 결국 딸애가 대학가기 일년만 키우기로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느 집이나 그렇듯 강아지 똥, 오줌치우고 목욕 시키기는 일은 결국 엄마 몫으로 돌아오는걸 투덜 거리며 겨우 적응하고 있는데 웬걸? 남편까지 엉뚱하게 또 하나의 강아지를 안고 오는게 아닌가!


“어느 집에서 이놈이 큰개와 주인으로부터 학대를 받는대. 그래서 이웃이 화가나서 뺏다시피 데려와 나한테 맡기네 어쩌지?” 한다.

영어로 지은 강아지 이름이 부르시기 힘드신지 어머니가 ‘또순이’ 라고 몇번 부르시더니 결국 또순이가 되어버렸고 남편이 데려온 작은 강아지는 사랑을 못받았다고 ‘사랑’ 이로 불렀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또순이와 사랑이로 인해 갑자기 대가족이 됐다.

시간이 흘러감에 정도 듬뿍들어 이젠 헤어지기는 커녕 가족의 행복과 위안과 웃음의 원천이 되었다.

남편과 의견차로 말다툼을 하고 나는 마음이 상해서 씩씩거리고 있는데 조금후 방안에서 아주 부드러운 남편 목소리가 들려 가만히 문을 열어보니 혼자 중얼 중얼 강아지들에게 대화를 하는게 아닌가.

또한 소중하기에 더 애틋한 자식이지만 생각과는 달리 대학을 앞두고도 공부는 뒷전인 아들에게 공부 좀 하라는 공격 태세를 하면 아들은 바로 “엄마는 공부 얘기 말고 내게 할말이 없어요?”라며 방어 태세를 갖춘다.

“나는 강아지들 보다 더 못해. 엄마는 나한테는 화내고 강아지들 한테는 부드럽게 말하고 그러잖아요!” 잔뜩 화가나서 투덜거린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어찌 강아지와 견주겠는가. 우라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 너무나 사랑하면서도 희생하고 주는만큼 받고 싶은 기대치가 자리잡아 늘 더 갈망하고 불평하며 더 큰걸 잊어 버린채 서로 본의 아니게 상처주고 아파한다.


오랜동안 살아온 서로 사랑하는 부부라도 관점이 다르고 기대치와 요구사항이 많은 이유로 티격태격 하면서도 강아지한테 만큼은 그저 따듯한 눈길만 줄뿐이다.

아들 역시 내게 투덜 거리면서도 강아지와는 정답게 놀아줌을 볼때 우리가 주는 사랑보다 더 많이 이들은 갚는다는 생각이 든다. 문득 또순이와 사랑이를 보며 가만히 웃어본다

온종일 먹고 자고 싸고를 반복하는 아무 도움이 안되는 녀석들을 우리는 그저 사랑만 줄뿐이다.

가끔 밖에서 일이 꼬였을때나 화나는 일이 생길때면 우리 가족 모두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와 반기는 강아지들에게 정겨운 말투로 쓰다듬어 가면서 마음의 쉼터를 찾는다.

친구가 이혼을 하려한다.

너무나 남편을 사랑 하면서도 친구는 늘 목말라 했고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 허기져했다. 친구는 울며 내게 많은 얘길 하지만 아무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한채 그저 나는 들어줄 뿐이었다. 강아지를 쓰다듬다 문득 내일 아침 일찍 친구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친구야! 강아지를 키우다 사랑을 생각해본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주는만큼 본능적인 갈망에서 나는 화도 내고 아파도 본다. 그리고 연습 하려한다. 또순이와 사랑이에게 하듯 조건없는 사랑을 말야. 어쩜 그 순간이 몇배나 더 큰 행복으로 몰고 오기도 하지 않을까.”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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