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단일기/ 서진숙 임마누엘 한국학교 교사

2009-04-1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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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렸던 대추나무

앞마당의 장미들이 앞다투어 봉우리를 맺고 살며시 얼굴을 내밀 준비가한창인 것이 새삼 놀랍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집안의 추위가 아직 남아있는 탓에 봄이 멀리 있는 것 처럼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기다리던 봄은 오월의 여왕인 장미들이 합창을 하듯 자라나는 모습을 통해 나에게로 다가 왔다.
우리 집 정원에는 그 흔한 레몬이나 오렌지나무 하나 없고 장미가 많아 유실수를 심고 싶었다. 그러던 참에 지인으로 부터 정말 여리디 여린 대추나무 묘목을 얻었다. 그러나 넓은 자리가 없어서 해가 잘 들지 않고 좁은곳에 심고 물을 주면서 잎이 무럭무럭 자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대를 져버리고 한 잎 두잎 떨어져 거의 가지만 남게 되었다.
우리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어떤 가지가 우리에게 열매를 가져다 줄 것인지를.
가지를 꺾어 확인 하니 여러가지 중 한가지는 살아 있는 듯 했다. 우리는
뽑아버리기를 미루고 더 기다리기로 했다. 햇살이 따뜻한 어느날, 남편은 큰 소리로 나무에 아직 조그만 싹이 나오고 있음을 알렸고 난 마치 신기한 선물을 받은 것 처럼 마냥 기뻤다.

조그마한 대추나무 묘목 조차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표현하기 위해 새싹을 피어내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 같다.


우리는 조그만 비바람에도 그만두기를 잘하고 심지어 남에 일에 마치 죽지 않았는데 죽었다고 단정하는 말로 싹을 뽑아 버리기 일쑤이기때문이다.
지난 학기, 우리반에서 한 형제가 수업을 함께 받았다.
뒤늦게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여 동생이 어린 반으로 내려가기에는
너무 학년이 높고, 형이 올라가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었다.

형은 성격도 외향적이고 공부도 열심히 하여 잘 하고 있었지만 동생은 1년이 지나도 입을 잘 띠지 않았고 전혀 수업을 따라 하지 못했다.
다음 학기가 시작 할 때 어머니께서는 동생이 자기는 너무 못 하고 보잘것 없다면서 포기하고 싶어 한다고 말씀하셨다.
난 다시 한 번만 해보자고 이번에 포기하면 살면서 그것이 아쉬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라면서 설득했다. 다음 학기에 맨 앞에 앉아서 더듬 더듬 읽던 아이는 자신감이 붙으면서 대답도 잘 하고 그림그리기가 싫다던 녀석이 그림일기도 잘 쓰고 색칠도 잘 해와서 칭찬을 받고 있다. 그래서일까 고맙게도 지금 그녀석은 우리 반에서 제일 잘 하고 있고 활발해져서 수다스러워 지기까지 했다.

그 아이가 쉽게 포기 했으면 어쩔 뻔 했겠는가를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처음에는 작고 힘없이 보였던 묘목 한그루가 싱싱한 대추열매를 만들어 내듯이 자신감이 없었던 이 아이가 이렇게 많은 발전을 보이게 될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어쩔땐, 바쁜 학교공부와 방과후 활동들, 또한 한국학교까지 병행하느라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조급해지는 마음을 조금은 억누르려고 노력하고 기다리기를 오늘도 연습한다. 나의 성급함이 앞서 어린 대추묘목을 뽑아버리게 되는 실수를 범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항상 조심스럽게 아이들을 대하게 되고, 또한, 기다림이 길게 느껴질땐 흐뭇하게 미소지으며 열매를 바라보게 될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여유를 갖기위해 노력한다. 아직 미숙하고 자라날 날이 너무나도 많이 남은 아이들에게 우리 어른들이 함부로 말하거나 그 마음을 헤아리지 않아서 어린 싹을 죽게 하지는 말아야 겠다.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심어주고 밝은 모습을 지켜주고 싶은게 나의 마음이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로 어우러 질 수 있도록 물을 주고 보살피며 누렁이 지는 잎도 바라보며 기다려주면 어떨까?
오늘도 변화무쌍한 나의 마음을 다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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