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김현희(주부)

2009-04-1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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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비 인형

우리 집에는 딸들이 생일 선물로 받은 것들과 여기저기서 물려받은 장난감 속에 끼어 들어온 것 까지 해서 대략 10개의 바비 인형들이 있다. 인종별로도 다양하고 심지어 남자와 인어까지 구색을 제대로 갖췄다. 이 녀석들은 한 때 딸들의 총애를 받아서 놀 때나 목욕할 때나 언제나 함께 했는데 그 것도 때가 있는 지 요즘은 고양이 인형에 푹 빠져 나 몰라라 내팽개쳐 진 지 오래됐다. 이제 바비 인형들은 장난감 통 뒷 구석에서 좀처럼 오지 않는 성은(?)을 기다리기도 지쳤는지 내가 보기에도 기운이 빠진 기색이 역력하다. 이렇게 대접 못 받는 바비 인형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상하지만 난 좀 안쓰러워진다.

어린 시절 내게도 바비 인형이 있었다. 그때는 다들 바비 인형을 마른인형이라고 불렀었다. 일곱 살 무렵에 엄마랑 시장에 가면 완구점 앞을 지나갈 때마다 바비 인형을 사달라고 조르고 또 졸랐다. 그러나 우리 모친은 눈 깜짝도 않으셨다. 조르기도 지쳐갈 무렵, 어느 날 정말 꿈처럼 바비 인형을 사가지고 오셨다. 엄마한테 졸라서 옷도 만들어 입히고 친구들하고 놀 때도 잘 때도 항상 함께했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채 한 달이 못 되어 내 바비 인형을 잃어버렸다. 그 때의 상심이 얼마나 컸던 지 지금도 기억이 난다.

남편은 애들이 갖고 놀지 않는 장난감은 정리하라고 하지만 좀처럼 바비 인형들을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비 인형들이 내 어릴 적 기억 속에서는 꽤 귀중했기 때문이다. 정말 갖고 싶어서 완구점 앞을 지날 때마다 바라보고, 엄마한테 조르고, 그나마 정말 겨우겨우 잠깐 동안만 간직했었던 것이기에 어른이 된 지금도 버리기가 힘들다.

우리 딸 들은 아마도 이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바라고 애쓰고 기다리고 그런 과정 없이 너무도 쉽게들 손에 쥐는 것들이 많은 풍요의 세대는 많은 것들을 간직하기 보다는 쓰다 버리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눈만 돌리면 언제나 새롭고 더 신기한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온다. 이런 세대 속에서 무언가에 애착을 가지고 오래 간직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 나는 우리 딸들에게 어린 시절 바비 인형을 가졌던 나처럼 간절히 바라고 오래 기다려서 얻는 즐거움을 가르쳐주고 싶다.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이 판치는 세상에서 간직되어서 잊혀지지 않는 추억 거리가 많아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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