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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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통신

2009-04-0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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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 가신 김종호 목사님께 이메일을 보냅니다. 마치 흰 비둘기를 날리듯, 푸른 풍선을 띄우듯 서신을 올립니다. 채 봄눈이 녹지도 않았는데, 48세 젊은 나이로 갑자기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아픈 충격 속에 일주일을 보냈습니다.

큰 소명을 받고 성직자로 세우셨는데 왜 기량을 마음껏 펼쳐보기도 전에 데려가셨을까? 출세 대신 좁은 길을 선택한 종에게 왜 보람된 이생의 목회 대신 하늘 문을 일찍 여셨을까? 물론 천국은 믿는 이들의 궁극적인 본향이요, 언젠가는 모두 떠날 세상이지만 나 같은 필부로서는 안타까움에 며칠 잠을 설쳤습니다.


목사님, 지난 이태 남짓 월요일 저녁이면 주일설교를 보내주셨지요. 목사님의 강단설교를 직접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메일로 띄워주셨는데 저도 은혜를 오래 입었습니다. 깊은 묵상에서 나온 논리와 강물처럼 흐르는 은혜가 있어 예수님의 향기가 오롯이 느껴졌지요. 목사님의 글이 전 세계 1만회원을 가진 연우포럼에 고정 연재되며 호평을 받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지난 연말 두 번째 설교 칼럼집을 내시면서 제게 짤막한 추천의 글을 부탁하실 때만 해도 모든 여건이 어려운 때 출간이 쉽진 않을 텐데 걱정했었습니다. 지금 보니 서둘러 내신 책이 목사님의 소중한 유산이 됐으니 하늘의 숨은 뜻이었던 듯합니다.

설교집을 펼치면 큰 키에 반듯한 체격의 목사님이 온화하게 웃는 모습이 보입니다. 레드우드 앞에서입니다. 그 나무는 성직자의 삶을 참 많이 닮았습니다. 가운데 선 주목은 주위에 자신을 다 나눠주고 속이 텅 비었습니다. 나뭇결에 탄닌이 많아 벌레가 먹지 않는 정결함과, 오직 하늘만을 향해 곧게 오르는 고매함도 닮았습니다.

목사님의 숲에서 자란 두 따님을 보며 당신의 행복한 열매들이라고 느꼈습니다. UCLA 3학년인 큰따님 보라의 의연한 추모사는 그날 모인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은 아이팟 색깔로 고민할 때, 본인은 정작 가족들 아파트 월세 걱정을 하며 살아온 삶, 남들이 즐기는 주말에는 아버지의 작은 교회 어린이 반사로 봉사하며 “난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를 위로한 얘긴 눈물 없이 듣기 어려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딸 보라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제 핸드폰엔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가 녹음돼 있습니다. 보라야, 네 핸드폰 리밋 200이 넘었구나.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겠니. 내가 250으로 올렸다. 알았지?”

비록 가난한 삶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진실하게, 이웃들에게 겸손히, 가족들에겐 극진한 사랑으로 살아온 목사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레드우드만큼, 아니 하늘만큼 크고 높았습니다.

보라는 아버지 박사논문의 주제였던 욥기를 인용하며 추모의 글을 마쳤습니다. “주신 분도 주님이시오, 가져가신 분도 주님이시니 주의 이름을 찬양할 뿐입니다.” 그리고 목사님을 사랑했던 우리들에게 그의 최근 이메일 주소를 주었습니다. 김종호 목사@천국.net.


김희봉/ 수필가·환경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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