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정화 교수의 English for the Soul

2009-04-03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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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 /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A White Path / 백도[白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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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arned man who does not practice the Dharma
is like a colorful flower without scent.

학식이 많아도 진리를 수행하지 않는 이는
아름답긴 하나 향기 없는 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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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처음 읽었던 감동이 그대로 배어나는 이하백도 [二河白道]의 우화를 영문으로 다시 읽습니다. 재가 수행의 경지가 드높은 어느 눈 파란 백인 도반[道伴]의 이 메일에 실려 온 “두 개의 강과 하얀 길” 얘기.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말이 아닌 다른 언어를 통해 ‘다시 처음’ 읽게 된 하얀 풍유. 빙그레 미소 지으며 어린 시절의 하얀 감동을 되새김하는 오늘 내 모습이 바로 그 두 강 사이의 하얀 길 앞에 놓인 여행자의 모습에 겹쳐집니다.

‘Parable of Two Rivers and a White Path’의 얘기는 대략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서쪽으로 길을 걷다가 강을 만나게 됩니다. 강 이쪽에는 현세가 있고 건너편에는 아미타불이 관장하는 극락정토가 있는데, 이 강을 건너는 유일한 통로는 청정심으로 비유되는 백도[白道] 하나뿐입니다.

그런데, 이 강은 사실 두 개입니다. 좁고 [4~5치 정도] 하얀 길을 중간에 두고 동서 양편으로 갈라진 이 강은, 사나운 불과 성난 물로 이 좁고 하얀 길을 사정없이 공격해대고 있습니다. 마침 뒤에선 잔인한 도적떼와 맹수들이 따라 오는 데, 앞으로 나가면 물이나 불 때문에 죽을 것이고, 가만히 있어도 죽을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에 몰리게 됩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백도를 지나갈 궁리를 할 때, 동쪽에선 ‘이 길을 따라가면 죽지 않을 것이다’라는 소리가 들리고, 서쪽에서는 ‘바른 마음만 가지고 오면 우리가 너를 보호할 것’이라는 소리가 들리는데, 결국 이 두 말을 굳게 믿고 백도를 따라가야 정토에 왕생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사실 비유는 말로 풀지 않고 그저 음미하는 게 상책이지만, 그 숨은 뜻을 살짝 부연해 봅니다. [내심 골똘히 생각해 보길 원하는 독자들껜 죄송합니다.] 길 걷는 이는 수행자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묵상하는 크리스천이든 참선하고 염불하는 불자든 어느 ‘길’ 위를 걷는 사람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한 길로 매진하는 샴발라의 전사[戰士]입니다. 한 눈 팔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걷는 굳건한 신앙인입니다.

불의 강은 분노와 증오, 물의 강은 인간의 탐욕, 백도는 정토왕생을 바라는 깨끗한 믿음, 도둑떼와 맹수는 사람이 경계해야 할 오욕칠정[五慾七情]과 무명[無明]의 미혹을 뜻합니다. 그리고, 동쪽 언덕에서 나는 소리는 사바세계에 남아 있는 부처의 가르침, 서쪽 언덕에서 나는 소리는 극락의
주인 아미타불이 부르는 소리를 상징합니다. 한 마디로,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이르는 길, 지상에서 천국으로 가는 여정을 ‘좁고 하얀 길’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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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earned man who does not practice the Dharma
is like a colorful flower without scent.

학식이 많아도 진리를 수행하지 않는 이는
아름답긴 하나 향기 없는 꽃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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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강 사이의 백도에 뛰어 들려면 철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구세주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으면, 서원[誓願]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정토왕생 [Rebirth in the Pure Land] 또는 천국 가는 길이 있음을 확실하게 믿으면, 반드시 가고야 말겠다는 맹세가 저절로 우러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과 서원을 바탕으로 하루하루 수행의 기틀이 잡혀가게 됩니다.

믿음, 서원, 그리고 수행, 이 삼박자가 정토신앙[淨土信仰]의 근간입니다. Faith, Vows, and Practice, 서방정토의 아미타불이 계심을 믿고, 지금 당장 또는 육신 사후의 정토왕생을 맹세하고, 그리고, 그 믿음과 서원을 뒷받침하는 철저한 염불수행을 한시도 거르지 않고 이어가는 게 참된 정토인의 사는 모습입니다.

구세주의 존재를 믿고, 천국 가는 길로 내 삶을 매진할 것을 다짐하며, 날마다 기도와 묵상으로 정진한다면, 뭘 어떻게 왜 믿으며 무슨 수행을 왜 어떻게 하는가는 무의미한 질문으로 전락해버리고 맙니다. 수행과 정진 속에 질문 스스로 그 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성경과 팔만대장경을 두루 꿰고 있어도 지금 당장 수행과 정진이 없다면 향기 없는 꽃이요 남 돈 세는 가난뱅이라 경고합니다. 하염없이 아름다운 자태로 뽐내는 꽃이 전혀 향기롭지 않다면 실망입니다. 매일 수 백억 남 돈 세면서 스스로는 몹시 가난하다면 진정 남루한 꼴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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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ure Land is a projection of the mind.
But it is also real, to the same extent
that our world and everything around it are real.

정토[淨土]란 [결국] 마음의 투영이다.
그러나 그건 또 실재이다. 이 세상과 그 안의
만물이 실재인 것만큼 정토 또한 실제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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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과 정진의 원동력은 믿음입니다. 진정으로 믿어야 기도하고 염불하게 됩니다. 구세주와 서방정토불의 존재를 확실히 믿어야 참된 기도와 염불이 가능합니다. 막연히 믿으면 어설픈 수행이 따르게 됩니다. 간간이 하는 수행은 결코 정진[精進]의 경지에 이르지 못합니다. 뒤에서 쫓아오는 도적과 맹수 떼에 밀리듯 그렇게 다급한 심정으로 오직 일념[一念]으로 매진하려면 크고 확실한 믿음이 바탕을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굳은 믿음만큼 수행도 굳어집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진지하게 묻습니다.
“정토[淨土]가 진짜 따로 존재합니까?
[Master, does the Pure Land really exist?]
스승이 되묻습니다.
“이 세상은 존재하는고?” [Does this world exist?]
제자가 답합니다.
“물론입니다, 스승님.” [Of course, it does, Master.]
그러자 스승이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이 세상이 존재한다면, 정토가 존재함은 그보다 더욱 분명한 사실이니라!”
[If this world exists, then the Pure Land exists all the more!]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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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for the Soul 지난 글들은 우리말 야후 블로그 http://kr.blog.yahoo.com/jh3choi [영어서원 백운재], EFTS 폴더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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