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수잔 김(피아노 반주자)

2009-03-2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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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멘트 위의 들국화

“무슨 꽃을 좋아해요?” 누가 내게 물으면 나는 서슴없이 길가의 코스모스나 들국화를 좋아 한다고 대답한다. 웬지 그 꽃들은 아무 보호도 없이 잘 자라 언제나 길가에서 쉽게 볼 수 있어 지나가는 길에 잠시 쉼터를 안겨 주기 때문 일게다.
작년 이맘때 나는 하얀 들국화를 앞마당에 심었다 하얗게 수놓을 앞마당을 상상하며 행복을 느낄 겨를도 없이 시들시들 죽더니 아예 종적을 감춰 버렸다.

인연이 아닌가 싶어 포기한 들국화가 일년만에 놀랍고 깊은 감동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씨가 바람에 날려 떨어졌는지 약간 금이 간 시멘트 바닥 사이로 빼꼼이 앙증맞게 고개를 내밀고 있는게 아닌가. 얼마나 가슴이 떨리던지 “ 들국화야! 대견하다.” 연거퍼 칭찬해 주며 조심스레 좋은 땅으로 옮겨 심었다. 그리고는 삽시간에 들국화는 하얗게 앞마당 가득 채워져 갔다. 나는 앞마당을 보면서 행복했고 갈라진 시멘트 사이로 삐집고 올라온 강한 생명력을 보며 문득 우리 나라를 생각해 본다.

위 아래 강국들의 침략에 늘 시달리며 제대로 다리피고 살아보지 못한 우리나라는 들국화 못지 않은 강한 생명력을 지닌 민족 아닌가. 그 엄청난 시련을 겪고도 자신을 희생하며 자식 교육에 혼신을 다하는 우리 부모님 세대- 벼농사를 함께 도와가는 품앗이와 애경사에 두팔 걷고 나서는 상부 상조- 정겨운 그 세대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고 나라 밖 어디서나 은근과 끈기의 자랑스런 민족이며 우수한 두뇌로 잘 적응을 하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 부모님들이 자신은 강하고 모질게 살아오신 반면에 자식에겐 미처 가르치지 못한게 있다. 어둠 속에서도 딛고 일어서는 강인한 정신력보다 자신들의 열등감에 지나친 교육열과 물질 만능주의 우선의 결과로 인해 현실은 불균형으로 절룩거리고 있다. 머리는 꽉 차고 눈은 높아 가는데 가슴은 너무나 나약하다.


정상 인기만을 지키려는 유명 연애인과 경제 공황으로 자살 소식을 대하면 무책임한 그들의 삶에 대해 동정보단 야유를 보내고 싶다.
그들에 비해 내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몇해전 잘 아는 분이 지병으로 앓던 남편을 잃었음에도 슬픔을 딛고 남편 몫까지 두배로 일을 하며 힘들 때면 ‘나는 엄마다’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든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빈자리로 행여 상처될까 조심하며 남편에게만 맡겼던 집안 수리와 전기, 못질, 자동차 오일 체인지등을 하며 그동안 남편에게 얼마나 고마웠던지 실감하며 하루 하루 삶을 열심히 적응해 간다고 한다.

또 한 지인은 부동산으로 꽤 재산을 불려 늘 부러워 했는데 이번 경제대란으로 엄청난 부도를 맞았다. 다 죽어갈거라고 생각한 그 지인을 만났을때 뜻밖에도 “ 난 망해도 싸요. 웬만했을때 손을 놔야 하는데 욕심을 부렸어. 그동안 잘 누렸으니 그것으로 됐어. 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뿌린 현실이야!” 라고 여유를 보였다.
과연 나는 저런 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누렸던 것을 생각하기 보다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며 원통해 하는게 우리 아닌가.

삶과 힘든 역경을 지내온 우리 조상들과 모든것을 다 잃고도 새로운 시작을 겸허히 받아 들이는 그들을 보며 앞마당의 시멘트 사이로 삐집고 올라와 여유롭게 바람에 흔들리는 강인한 들국화는 바로 이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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