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울증 시대 / 김현희(주부)

2009-03-1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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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창

한국에서 통계상으로 한 해에 자살하는 사람의 숫자가 약 만 이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한 달에 천 명 정도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경제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조금씩 더 늘어나는 추세에 있단다. 자살하는 원인이야 수천가지겠지만 결국에 죽음으로 모는 것은 그 수많은 이유가 만들어 낸 우울증이라고 한다.

사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이 우울증에 걸린 사실을 자각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설마 내가?’ ‘뭐 이 정도 일로?’ ‘나는 그렇게 약하지 않아!’ 등등의 말로 우울증을 인정하지 않는 순간에 병은 더 깊어진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경우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 큰 아이와 두 살 터울인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 육아로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양가 부모님들이 다 한국에 계시기 때문에 아이를 키울 때 도움 받을 곳이 없었다. 하루 종일 아이들하고 정말 지지고 볶던 때였다. 게다가 새로운 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적응하려고 애쓰던 때였고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도 많이 힘든 때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감정의 기복이 참 심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인정하기 보다는 창피해 했었다. 그동안 스스로 만들어 왔던 자아상과 현실적인 내 모습의 간극 때문에 스스로를 더 괴롭혔던 거 같다. 어떻게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그림도 배워보고, 모임에도 나가보고, 학교에서 수업도 들었다. 그런 노력들 때문인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조금씩 커 나가자 한숨 돌리게 돼서인지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다. 그러나 우울했던 내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정말 변화했던 시간들은 나중에 왔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지인 중에 상담을 전공한 분이 있었다. 그 분과 일대일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중에 우울했고 다쳤고 고립되어있던 마음들이 열리고 치료되는 경험을 했다. 그 동안 어떻게 내가 이런 말들을 다 담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했었고 그분은 들어주었다. 그렇다고 그 분이 내게 어떤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해 준 건 아니었다. 그냥 얘기하고 공감해주는 그 순간에 평화가 찾아왔다.

우울했던 한 시기를 지나고 내가 얻은 게 있다면 사람은 타인에 의한 공감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좀 더 내가 일찍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공감해 줄 누군가를 만났다면 우울증도 좀 더 빨리 쉽게 극복했을 것이다. 우울증에 관한 통계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일 6월 달엔 자살자 수가 거의 사십 퍼센트 감소했다는 것이다. 월드컵을 보면서 정말 한 마음 한 뜻으로 소리 지르고 환호하던 그 때, 모두의 마음이 축구 하나로 공감되던 그 때만큼은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었을 우울증이 치료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도 있다. 영국 다이애나비가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 영국 전체가 울음바다가 된 적이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었던 그 때에도 자살자 수가 감소했다고 한다.

요즘 한국에서 젊은 여배우와 트로트 가수 한 분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속사정은 정말 본인들 말고는 알 수가 없겠지만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외로웠던 영혼들을 공감해 줄 사람이 옆에 없었다는 게 아쉽다. 한자로 사람 인 (人)은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형상이라고 중학교 때 배웠다. 옛 사람들은 말한다. 사람은 누군가를 기대고 의지하며 공감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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