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erial Nature does everything.
Yet, the soul deluded by ‘ego’ thinks
“I am the doer.”
물질계의 본성이 만사를 해낸다.
그러나, ‘에고’에 현혹된 혼[魂]은
“내가 행동하는 주체다”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손톱 깎은 게 불과 며칠 전 같은데 어느새 또 깎아 달라고
열 개 손톱 끝이 모두 길게 자라 있습니다. 아침 샤워 후 자란 손톱을
깎으며 자문해봅니다. 이 손톱을 어느새 누가 이렇게 길러 놓았을까?
분명, 내가 ‘의식적’으로 피와 에너지를 돌려 이 같은 결과를 이뤄낸 건아니지만, 따로 또 누가 이런 성과(?)의 책임을 질 존재가 확연치 않음도
사실입니다.
이를 닦으며 거울 속에 비친 얼굴 속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표정이 살짝
오버랩 되는 중에 아차 수염도 깎을 때가 되었음을 알아챕니다. 면도를
하며 또 묻습니다. 가만, 이 수염을 때맞춰 길러내는 이가 과연 누구란
말인가? 분명, 내가 애써 기른 결과는 아님이 분명한데, 이 또한 어느
누구라 딱히 집어낼 행위자가 불분명하지 않은가?
그저, 자연의 생성 유지 파괴라는 삼박자에 기인한 뻔한 현상을 무슨 대단한 기적이라도벌어진 듯 의아해하는 이유는 사실 모든 게 다 경이롭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손톱 머리카락 수염 등이 자라는 일뿐 아닙니다. 먹은 음식을 소화
흡수해 몸 구석구석 영양분을 날라 육신의 조화를 꾀하는 일이며, 들숨과
날숨을 통해 기[氣]의 순환을 촉진하는 일, 새로 태어나서 살다 돌아가는
그 날까지 꾸준히 쉴새 없이 진행되는 그 보이지 않는 신비의 행위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Who is the Real Doer? [후우 이즈 더 리~일 두어?]
분명 따로 행위의 주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는 ‘에고[ego]에 ‘현혹된’나는 마치 ‘내가’ 이 모든 행위의 주인공인양 늘 착각하고 삽니다.
영어단어 ‘delusion’ [딜루~젼]은 동사 ‘delude’의 명사형으로 ‘착각, 망상, 미혹, 환상’ 등으로 번역되는 심오한 말입니다. 태어남과 죽음이 마치 실제인양, 보고 느끼는 대로의 시간과 공간이 마치 전부인양, 다섯 감각기관을 통해 인식되는 대상이 마치 실체인양, 늘 불안과 공포에 현혹되어 [deluded]사는 게 범부의 살림살이입니다. 깨어나고 보면, 매이트릭스 [the Matrix]밖에 나와서 보면, 우물 밖에 나와서 보면, ‘큰 그림’으로 보면 “아하!”[Aha!]하고 크게 외치게 될 바로 그 좁은 테두리 안에서 ‘에고’라는 괴물에 늘 현혹되어 [deluded] 사는 게 장삼이사들의 사는 모습입니다.
The bewildered spirit/soul
thinks himself to be the doer of activities,
which are in actuality carried out by nature.
혼란에 빠진 영혼은
스스로가 마치 행위의 주인공인양 생각하지만,
사실 모든 행위는 자연법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영어단어 ‘bewilder’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온통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극도의 혼란에 빠진 모양을
수동태로 서술하는 말이 바로 ‘bewildered’ [비윌~더드]입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진리와 실체를 명쾌히
꿰뚫지 못한 채 살기에 극심한 혼란이 불가피합니다.
우선, 태어남의 이유도 확실히 모릅니다. 내가 어디서 왜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가? 태어난 직후 몸에서 유아기 몸을 거쳐 어린이 몸, 청년의
몸, 중 장년의 몸, 그리고 노년의 몸을 거쳐 결국 몸을 떠나 돌아가는
그 날까지 쉴새 없이 바뀌는 몸, 어느 몸이 진짜 내 몸인지? 또 그 몸
안팎을 늘 배회하는 마음과 감정 그리고 이른바 영혼인지 의식인지 하는
물건의 진상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깨고 잠 자고 꿈 꾸고, 또 깨어나
움직이다 잠들어 꿈꾸고, 또 깨고 자고 꿈꾸고 하다 어느새 돌아갈 때가
되면 그야말로 혼비백산[魂飛魄散]이라, 얼은 나르고 넋은 흩어지니 미상불‘bewildered’라는 단어가 이토록 실감날 수가 없습니다.
왜 어떻게 오고 가는지를 명쾌히 모르니, 살면서 희미한 정신으로 이것저것 매달려 봅니다. 인생의 참 목적이 뭔지 삶의 진정한 의미가 뭔지 마지막 돌아가는 길에서조차 혼미한 채 흩어지는 영혼들이 많습니다. ‘bewildered spirit/soul’은 자칫 갈 곳 잃은 망령을 지칭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는 길에 ‘확실히’ 붙잡을 ‘그 무엇’ 또는 ‘그 분’이 없다면 진짜 황량한 귀향길이 될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입니다. 다시 돌아오는 길 또한 두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Material Nature does everything.
Yet, the soul deluded by ‘ego’ thinks
“I am the doer.”
The bewildered spirit/soul
thinks himself to be the doer of activities,
which are in actuality carried out by nature.
세상만사를 주관하는 건 결코 내가 아닙니다.
알고 보면 인생사의 주요한 매듭은 모조리 내 의사와는 별 상관없이
진행됩니다. ‘Meaningful Coincidence’ [의미 있는 우연] 또는 ‘공시성[共時性]의 원리’로 풀이되는 ‘Synchronicity’, 모두 행위의 주체가 결코 내가 아님을 늘 일깨우는 그 분의 힌트입니다. 차마 통째로 모두 알리기엔 미안한 나머지, 간간이 잊을 만하면 알려주고 또 알려주는 ‘그 분’의 자상한 안내입니다.
진정 나와 세상을 돌리는 이는 바로 ‘그 분’입니다.
따로 ‘의인화’된 인격이 와 닿지 않는다면 그저 ‘道’나 ‘섭리’로 풀어도 될 일입니다. 하지만, 의인화는 더 가깝게 다가옵니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내 손톱을 길러내는 그 분을 체감할 때 문득 떠오르는 말이 있군요.
“Life is the dancer. You are the dance. Let life dance you.”
삶은 춤 추는 자요 그대는 춤이다. 삶이 그대를 춤추게 하라.
잠시, 내 손톱 안에서 춤추고 있는 삶을 가만히 바라 봅니다.
Aha! There s/he IS, the Real Doer!
OM~
English for the Soul 지난 글들은 우리말 야후 블로그
http://kr.blog.yahoo.com/jh3choi [영어서원 백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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