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박선영(주부)

2009-03-05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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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험난했던 미역국 끓이기

결혼을 얼마 앞두고 엄마의 생신이 다가왔습니다. 처음이자 결혼 전엔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미역국 손수 끓여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미역국을 끓이기로 했죠. 미역을 미리 불려야 한다는 얘기에 생신 전날 밤 김장용 커다란 일명 고무 다라이를 찾아 미역을 물에 담궈 놓고 시계를 다음날 새벽 5시에 맞춰놓았습니다. 대학 졸업과 동시 대학원엘 진학하고 또 직장생활을 병행하던 때라 요리는커녕 집에서 라면 끓일 시간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 솜씨였기에 미역국 하나 끓이기 위해서 제게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 여겼던게지요. 이제 미역이 잘 불었을라나 생각하며 부엌으로 들어서는데 왠일인지 이 이른 시각부터 온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있는게 아니겠어요. 다들 무슨 일이냐며 부엌으로 들어서자 엄마가 물어보십니다.

“이거 니가 넣어놨니?”


그렇다는 제 대답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또 물어보십니다.

“그런데 이걸 왜 넣어놨니?”

아니 엄마는 딱 보면 모르겠냐며 막내딸이 엄마 생신상 한번 차려보려고 미역국 끓이려 했다며 머쓱해하니 온식구가 뒤집어지게 웃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제게 언니가 “선영아~ 이건 미역이 아니라 다시마다!” 한마디 하더군요.

네~ 전 다시마가 미역인줄 알고 크~게 한 덩어리 물에 불려놓았던게지요. 게다가 아니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은 꼬불꼬불한 모양에 가늘던데 이건 왜 사각형에 일자형이지? 이걸 꼬불꼬불하게 모양을 내서 가늘게 내가 가위로 잘라야하나? 뭐 이런 얼토당토않은 고민까지 하며 어젯밤 잠들었던 것입니다. 다시마랑 미역은 자기도 구분할 줄 안다는 남동생을 포함하여 박장대소하는 온식구를 부엌에서 내몰고 다시 한번 미역국 끓이기에 도전했습니다.

이번엔 잘해보리라 다짐하며 미역을 물에 담궈놓고 나왔지요. 제 덕분에 일찍이들 일어난 가족들과 모여 수다를 떨다가 지금쯤이면 잘 불었을거란 엄마말씀에 부엌으로 갔습니다.

헉~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난리랍니까. 발디딜 틈조차 없더군요. 부엌은 완전 미역바다! 온 미역이 기어 나와 스물스물 기어다니더군요. 전 미역이 불리면 양이 엄청나게 불어나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 가족 수 다 세어 5인분이니 넉넉히 끓이자 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한 봉지를 탈탈 다 털어 넣은 게지요. 아주 긴~~ 미역을요. 저희 가족은 또다시 빨리 부엌으로 모이라는 엄마의 호출에 다들 뒤집어졌습니다. 그 뒤로 저희 가족은 모이면 간간히 그때 이야기를 하곤합니다.

한참이 지나도 얘기할 때마다 배꼽을 쥐고는 웃다가 결국엔 눈물까지 글썽이시는 우리 엄마. 제가 끓인 말도 안되는 그 미역국이 너무나 맛있었다며 회상하시는 우리 엄마. 결혼하면 더 잘해야지 싶었지만 결혼을 하고 나니 나를 챙겨주는 이는 없이 챙겨야 할 가족은 너무나 많이 늘었고 며느리의 부담감은 모든걸 이해해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친정엔 시댁보다 더 소홀하게 되고야 말더군요. 이럴줄 알았으면 결혼 전에 열심히 효도할 것을 하며 후회도 해보지만 이 순간도 지나고 나면 후회하게 될 것을 알기에 지금에서라도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씩하나씩 부모님께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철들려 하니 또 미국에 와 멀리 떨어져 지내니 상황이 여의치 않고 올해도 엄마는 이 못난 딸래미가 끓여준 미역국 이야기를 무용담마냥 주변 지인들께 들려주시겠지요. 전 이 이야기를 하게 되면 웃다가도 결국엔 꼭 울게 되네요. 이젠 주부 7년차. 다음번 생신 때는 꼭 맛있는 미역국과 함께 근사한 생일상 차려드릴게요. 엄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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