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단일기/송일란(SV한국학교 교사)

2009-02-2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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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한국 학사 일정에 맞게 2월에 학기가 시작되는 우리 학교 서울반. 새 학생들을 만날 기대로 살짝 긴장되고 설렌다. 초반에 확 잡을까 생긴 대로 웃으며 시작할까 교실로 들어서기 전까지 고민을 한다.

결국엔 생긴 대로 살자로 끝을 맺고 교실 문을 연다. 아이들의 탐색하는 눈빛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기세가 느껴진다. 나도 아이들을 한번 둘러본다. 교실에는 기대감과 탐색전으로 분위기가 자못 팽팽하다. 서로 본색을 드러내지 않은 채 출석을 부르고 대답한다. 22명이다. 남학생이 많은 것을 보니 분위기를 풀어주면 안되겠군... 작전 변경이다.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시킨다. 약 세 쪽 분량의 내용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 22명의 아이들 이름을 다 외워야 한다. 10분 정도의 시간에 아이들 얼굴과 이름을 잘 대조하여 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름도 왜 그리 비슷한 것이 많은지, 현정이가 있으면 정현이도 있고 지원/지연, 민지/은지... 일부러 헷갈리기 좋게 조합을 맞추어 놓은 것 같다. 식은땀이 날 정도로 집중을 하며 외운다.

과연 다 외웠을까? 힌트를 준다면 나는 두 자리 수 더하기만 해도 손가락을 다 폈다가 하나씩 접어서 계산을 해야 하는 좀 모자란 사람이다. 예전엔 그것도 부끄럽다고 책상 밑이나 주머니에서 남모르게 했지만 손가락이 눈에 안보이니 틀린 답이 나와서 요즘엔 아예 사람이 있건 없건 손가락을 꺼내 놓고 계산을 한다. 아니면 나 몰라라 남이 계산해 주기를 기다리는 쪽이다.

그런 내가 다 외웠을까?... 정답은? 다 외웠음!

아이들이 책을 다 읽고 내려놓는 순간 아무개의 이름을 부르며 눈을 찌리릭 맞추면 아이들은 처음에는 아는 사이인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다가 이 아이 저 아이 이름을 다 부르며 눈을 맞추면 교실 분위기는 금방 확 바뀐다. 여기저기서 꽃망울이 팡! 팡! 터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이들과 내가 더 이상 낯선 개체와 개체가 아닌 돌돌돌 맑은 개울물이 흐르는 곳에 같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친밀한 사이로 바뀌었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중략>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모두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 충만한 느낌이 온몸으로 스며든다. 우리는 서로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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