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정화 교수의 English for the Soul

2009-02-20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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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커뮤니케이션 학 박사 /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No Man Is an Island. / 아무도 섬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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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an is an island,
No man stands alone,
Each man’s joy is joy to me,
Each man’s grief is my own.

아무도 섬은 아니랍니다,
아무도 홀로 서 있는 게 아니죠.
그 누구의 기쁨도 곧 나의 기쁨이요,
그 누구의 슬픔도 곧 나의 슬픔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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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의 겨울 비를 맞으며 밤늦게 귀가하는 차 안에서 존 바에즈의 노래를 듣습니다. 이리저리 돌리던 채널에 우연히 맞아 떨어진 그 특유의 존 바에즈 음성이 구성지게 귓가에 실립니다. 정말 오랜만에 듣습니다.
불현듯 고등학교 시절 통기타를 튕기며 부르던 밥 딜런의 노래들도 겹쳐집니다. 그러다, 가만히, 존 바에즈 노래의 가사를 음미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 동영상으로 들은 눈 파란 유럽사람 청안 스님의 영어법문 내용이 존 바에즈의 노래로 다시 풀어지고 있음에 흠칫 놀랩니다.
물론, 우연히 벌어지는 일이 아님을 압니다. 늘 각성으로 대하는 영어 단어 ‘synchronicity’ [공시성/共時性] ? 바로 그 말이 양 눈 사이에 머뭅니다.

숭산 스님의 서양 출신 제자로 지금 항가리 부다페스트 근처에 한국식 절을 지으며 눈 파란 유럽불자들께 열심히 법문을 전하는 청안 스님. 삼 십분 정도의 분량으로 열 두 번에 걸쳐 방영된 불교텔레비전의 프로그램을 모두 보고 귀가하는 중입니다. 개인 블로그 ‘선/Zen’ 폴더에 올리느라 제법 꼼꼼히 보고 들은 터입니다. 모르는 마음 [Don’t Know Mind], 화두에 관한 불교의 기본 상식에서 반야심경 풀이, 그리고 궁극적 이타행[利他行]의 길까지 자상하게 영어로 푸는 청안 스님의 법담에 크게 감탄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귀가하던 길입니다.

숭산 스님의 ‘오직 모를 뿐!’ [Only Don’t Know!]에서 출발한 청안 스님의 열 두 차례 법문이 과연 어떻게 끝을 맺을 것인지 점점 궁금했습니다. 말로 풀 수 없는 불립문자/교외별전/직지인심/견성성불의 선[禪]. 넌지시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면 모두 끝날, 할[喝] 한 마디 몽둥이 한 방[棒]이면 모두 끝날, 손가락 하나 들어 보이던지 촛불 하나 훅 불어 끄면 모두 끝날 그 선의 세계를 과연 무슨 말로 끝낼지 꽤나 궁금했습니다. 긴 얘기 짧게 매듭짓는 청안 스님, ‘How can I help you?”가 불교의 선의 궁극과제라 결론짓습니다. 나의 깨달음은 결국 우리 모두의 깨달음을 위한 선행 단계일 뿐임을 간단하게 천명합니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그 수 많은 중생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저 언덕 너머 피안으로 실어 나르겠다는 보살행이 결국 선 수행과 깨달음의 진정한 이유임을 설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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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an is an island,
No man stands alone,
Each man’s joy is joy to me,
Each man’s grief is my own.

아무도 섬은 아니랍니다,
아무도 홀로 서 있는 게 아니죠.
그 누구의 기쁨도 곧 나의 기쁨이요,
그 누구의 슬픔도 곧 나의 슬픔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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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시인이었던 죤 돈 [John Donne, 1572-1631]은 일찍이 이렇게 읊은 바 있습니다. “인류 모두는 저자 한 분이 한 권 책으로 써낸 결과이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책에서 한 챕터가 잘려 나가지만, 곧 보다 나은 언어로 번역 된다. 그렇게 모든 챕터들이 다시 쓰여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성소에 모이라는 종이 울리면 그건 사제만 오라는 게 아니라 예배할 모든 사람을 부르는 소리임을 알라. [중략] 그 누구도 섬은 아니다. 아무도 그 자체로 섬은 아닌 법.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난 전 인류에 관련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려고 굳이 사람을 보내지 말라. 그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림이니.”

“No man is an island; entire of itself...any man’s death diminishes me, because I am involved in mankind; and therefore never send to know for whom the bell tolls; it tolls for thee.

영어 단어 ‘diminish’가 깊은 시적 함축을 내포한 채 다가옵니다.
작게 하다, 줄이다, 감소 하다는 뜻의 단어가 적소에 쓰임에 간결하지만
심오한 의미를 전합니다. “It diminishes me.” [그건 날 작게 해. 날 감소시켜. 날 줄이지.] 누군가의 죽음 하나가 바로 나를 그만큼 감소시킨다는 긴박한 상호연관성을 느낌으로 깨달으면 곧 사랑과 자비로 나아가게 됨은 지당한 일입니다.

나를 부르는 종소리를 듣고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하고 묻는다면 좀 슬픈 코미디가 됩니다. 훗날 토마스 머튼 신부께서 책 제목으로 쓴 “No Man Is an Island”는 많은 불자들이 연기[緣起]를 설명할 때 모든 생명체의 상호연관성을 강조하며 인용해온 잠언이기도 합니다. 아마존 정글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지구촌 반대편 어느 곳 태풍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너무나도 지당한 섭리를 이미 많은 선지자들이 간파해 놓은 터입니다. 죤 돈 사제의 정곡을 찌르는 시구는 청안 스님이 쉽게 넘나들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꿰뚫어 보는 분들의 지혜와 같은 선상에 있음도 자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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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an is an island,
No man stands alone,
Each man’s joy is joy to me,
Each man’s grief is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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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울 비 차창 안에서 듣는 존 바에즈의 호소하는 목소리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죤 돈 사제시인과 토마스 머튼 신부와 릴케 시인과 에크하르트 성자, 그리고 이 시대의 청안 스님의 법문이 모두 존 바에즈의 목소리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께 전해지고 있음을 감지합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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