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임문자 칼럼 / 그림자

2009-02-0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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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가만히 서 있기도 하고 움추리기도 하면서
나의 흉내를 내며 걷는다
그것의 모양은 수시로 변하나
신기하게도 나의 모습을 닮아있다.
비가 오거나 어두어지면
방안으로 들어와 내 곁에 앉아
‘너는 나의 운명’이라고 소근거린다.

그러나 나는 주인이며
그것은 나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영원한 동반자 그것의 운명은
또한 나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태어나
건강한 몸짓으로 건강하게 움직이기를 원한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것에게
어느 날 무심한 듯이 물을 것이다.
넌즈시 내 마음 드러내보이며 내가 물으면
나의 분신인 그것은
마침내 모든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작별의 시간
그러한 날도 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던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마침내 알게 될 나와 나의 분신
운명과도 같은
그림자 하나
나와 함께 살고 있다.

햇빛이 찾아오는 날에 나는 시간에 따라 여러 모양의 그림자를 만든다. 창조주가 만든 하나밖에 없는 내 모습을 그림자 속에 담아둔다. 그림자는 몸속으로 들어올 수가 없다. 나의 육체에는 처음부터 영혼이 살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대한 햇빛도 나를 비껴간다. 다만 그 반대쪽에 공간을 하나 만들고 그 공간을 그림자에게 내어준다.

나의 충실한 그림자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어느 화창한 봄날에 당신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얼마나 소스라치게 놀랄 것인가. 그것은 나의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보증서이며, 나의 영원한 동반자이며, 이세상을 하직할 때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갈 나의 환상, 나의 사랑, 나의 그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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