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김희숙(전 방송인)

2009-01-2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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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도 감사해야지

사회적으로 정해진 법규를 따르는 것이 정상적임을 모르는 바 아니나 때때로 교통법규를 어겨 경찰로부터 티켓을 받을 때의 심정은 왠지 억울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으니 도대체 이 노릇을 어찌해얄지. 적어도 반듯한 생각을 지닌 사람이라 자부하면서 말입니다. 운전하지 않고는 살기 어려운 미국생활, 거기에 속도라든지 신호등을 철저히 준수하며 운전한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의젓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도 운전대를 잡으면 머리에 뿔이 난 괴물처럼 변한다는 우스운 얘기도 있으니 말입니다.

도심과 달리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엔 왜 그렇게 멈춤 사인이 많은 건지요. 아이들을 깨워 밥 먹이고 준비시켜 등교하는 아침 길에, 모두 열 개도 넘는 멈춤 사인에 완전히 정지했다가 다시 출발하려면 여간 조급해지는 게 아닙니다. 근 4년을 이곳에서 살면서 아마 서둘러 멈춤과 출발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됐던 모양입니다. 그리 바쁜 상황이 아니었던 지난 주간에 여느 때처럼 뉴스를 들으며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완전 멈춤을 하지 않은 채 건성으로 잠깐 멈췄다가 이내 출발을 했던지 마침 근처의 경관에게 발각이 되었습니다. 뒤에서 삐요삐요 하며 좇아오는 그 경관을 향해 난 너무나 의아한 표정으로 내가 뭘 잘못했던가를 되물었습니다. 그 경관은 하나도 무섭지 않은 표정으로 아니 오히려 건수 하나 올렸다는 듯 싱글거리며 운전 면허증을 요구했습니다. 사실 이미 내 맘속에선 콩콩거리는 자책의 소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드러낼 수 없고 최대한의 자제력을 동원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탄원을 했습니다. 그 경관은 누구나 교통티켓을 하나쯤은 받게 마련이니 크게 실망하지 말라며 노란 종이에 서명하라 명령했고 난 정말 억울하단 표정을 계속 해대며 멈춤을 했는데 왜 티켓을 주는지 모르겠지만 경고가 아닌 티켓을 주는 것은 억울하다 툴툴댈 뿐이었답니다. 그 이후는 온통 회색하늘에 비가 간간 내리는 우울함으로 점철된 그야말로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기운을 잃고 찡그린 채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티켓의 효과는 확실했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스스로 보기에도 정말 놀라우리만큼 운전하는 태도가 확 바뀌었으니까요. 멈춤 사인에서 하나, 둘, 셋을 세는 것은 물론이요, 보통 도로에서의 운전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결국 난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깊은 뜻이 있었겠거니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앞일을 어찌 알 수 있으리. 조심해서 길을 다니라고 깨우치는 특별상이 아닌 벌을 받았으니 차라리 감사해야겠다 생각하는 거지요. 겨울인데도 초록빛 잔디가 싱싱하고 빨강, 노랑, 보라의 팬지 꽃이 예쁘게 둘러진 집 앞에 차를 세우고 깊은 숨을 쉬어봅니다. 그래, 이것도 감사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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