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80살의 고갯마루
다시 시작하는 수필 산책
나를 담아 실고 내 인생의 철길을 달려온 기차는 또 하나의 내 인생의 전환점인 내 나이 80살 고갯마루의 환승역에 나를 내려놓고 멀어져 간다.
나는 환승역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나를 종착역으로 태우고 갈 기차가 오기를 기다린다. 내가 기다리는 차가 막차인듯 나 말고는 별로 손님이 없다. 이미 날은 불그레 저녁노을로 물들었다. 나는 팔순의 고갯마루에 앉아 내가 살아온 지난 날을 되돌아 본다. 갖가지 사연들이 내 상념의 수차 (물레방아) 바퀴를 타고 돌아흐른다.
내가 태어나 47살에 미국으로 이민 온 그 전 반세기의 사연들은 접어두자. 1976년 어쩌다 이 땅으로 이민와서 이질 문명의 풍토속에서 물 위의 기름같이 살아온 세월들의 사연들이 사건과 복선이 많은 연극의 장면처럼 펼쳐진다.
33년의 이민생활. 일제강점기 36년만큼이나 긴 세월! 나는 이민 초기부터 미국 그로서리(grocery) 가게를 운영하면서 카운터 옆 의자에 걸터 앉아, 20년 세월을 흘려 보냈다. 또한 그 기간 중 12년 동안이나 원고지 한 칸도 메우지 못한 작가대열에서 멀리 뒤처진 낙오병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내가 이 땅에서 꾸미는 연극의 막이 과연 올라 갈날이 있을 것인가 하는 기약없는 기다림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쥐 구멍에도 볕 들날이 있다’ 라는 속담같이 나의 암담하고 캄캄한 삶의 현장에 햇볕이 빛이는 날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1988년 이 ‘수필산책’ 란에 고정으로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부터였다. 수필가가 아닌 나임에도 불구하고 18년동안 이민생활의 애환을 그린 글을 수필집 4권에다 담아 낼 정도의 많은 수필을 썼다. 그리고 1989년 성인극단 금문교’ 에 이어 94년에는 아동극 공연에 의한 우리말 교육과 우리민족문화를 이민 2세 어린이들에게 알리기위해 아동극단 ‘민들레’를 창단하여 뮤지칼 ‘콩쥐 팥쥐’로 장장 10년 장기 공연을 치루기도 했다. 그것도 많은 박수갈채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좋은 일 다음에는 나쁜 일이 따라 다니게 마련인 것처럼, 나의 글 쓰기 작업은 2007년 나의 자서전과 네번째 수필집 ‘뱃고동’ 발간을 끝낸, 시점에서 중단 되고 말았다. 한편 민들레의 공연도 2004년 내 고향 통영 공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올리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고 만 것이다. 그 까닭은 다름 아닌 내 눈의 시력 악화 때문이었다. 나는 심지가 거진 다 타버린 호롱불같이 깜박이는 내 눈의 시력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다급한 처지에서 나는 하나님께 매달렸다. 한편으로 내 안과 주치의에게 적절한 수술을 간청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주치의는 여러 번의 수술 때마다 Do my best. 다시 말해서 나의 최선을 다하겠다 라는 말을 빼 놓지 않았다.
드디어 하나님의 도움과 주치의의 정성어린 시술로 내 두눈은 오른쪽 눈에 이어 왼쪽 눈마져 안개가 걷히듯 차츰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렇게 3년 만에 이 칸을 메울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나는 금년으로 창단 15주년을 맞는 아동극단 ‘민들레’ 의 새로운 공연 계획을 세워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성사 가망성은 매우 희박하다. 미국 경제의 터밭이 쑥대밭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들도 나의 나이와 경제 악화의 현실을 들어 강력히 만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들의 반대를 귓전으로 흘려 버릴 수 없는 까닭은, 우리 가족 모두의 협조 없이는 어떤 공연도 이루어 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고집스럽게 민들레의 공연을 밀고 나가려 함은, 지난 15년 세월 화려하게 꽃 피었던 민들레가 소리없이 사라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인 것이다.
한편 내 나이 80살의 고갯마루에서 내가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는 대신 내가 어떻게 보람있게 살다 갔느냐를 후세들에게 남겨두고 싶은 지독한 욕심에서 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많은 화가들이 또 사진작가들이, 저녁노을이 붉게 물든 들녁길을 소를 몰고 지개를 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서정적인 모습을 즐겨 화폭에, 그리고 인화지에 담고 있는 그들의 정서적인 모습이 내 인생 황혼의 빛깔이었으면 하는 바램이기도 하기 때문에서 말이다.
어쨌든 나에게 남다른 건강과 시력마져 밝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