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 칼럼- 전진하려면 전진기어를 넣어야

2009-01-19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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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증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처음 운전을 배울 때를 기억할 것이다.

필자도 그때를 기억한다. 난생 처음으로 운전석에 앉아서 핸들을 이렇게 저렇게 폼 나게 돌려보다가 기어를 넣고 조심스레 페달을 밟았는데 차가 “부릉”하며 앞으로 나가는 것이 참 신기했다. 특히나 걷는 것과 비교해 보면 너무 달랐다. 사람의 경우 얼굴과 몸의 위치만 보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알 수 있지만 차를 몰 땐 기어위치를 보지 않고 무조건 페달만 밟게 되면 차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후진기어가 들어가 있는 것을 잊은 채 전진하려다 차가 뒤로 가는 바람에 깜짝 놀라는 일도 한 번씩 경험한다. 앞으로 가려면 전진기어를 넣어야 한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안다. 하지만 우리들은 살면서 종종 후진기어를 넣은 채로 앞으로 나가기를 원한다.

한 인터넷 조사에 의하면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우리들 네 사람 중 한 사람은 과거의 어떤 일로 인해 현재 괴로움을 당하고 있고, 또 그럼으로 그 사람의 미래에까지 악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누구나 때때로 지난날을 돌아보며 후회와 반성을 섞어가며 한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 과거의 일들을 수십 수 백 번 곱씹으며 다가올 미래에까지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과거집착증은 심해지면 정신질환으로 악화될 수도 있다.


우리들의 기억장치 시스템에는 두 개의 서랍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서랍에는 좋은 기억을 담아놓는 서랍이다.

이 서랍 안에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 친구와의 우정, 달콤한 사랑의 감정, 성공의 성취감들, 남을 도우면서 느꼈던 뿌듯함 등등 좋은 추억과 행복한 감정들을 차곡차곡 넣어두는 서랍이다. 반면에 두 번째 서랍은 좋지 않은 기억들을 모아두는 서랍이다. 그 안에는 불행하고 상처의 기억들, 시기와 미움의 생각들, 실패와 좌절과 패배감을 넣어서 보관한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수많은 일들을 겪고 각각의 일들을 두 서랍 중 하나에 보관한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한 번씩 그것들은 다시 끄집어내 본다. 사람에 따라서 같은 일이라도 어떤 사람은 첫 번째 서랍에 또 다른 사람은 두 번째 서랍에 보관한다. 또 사람에 따라 첫 번째 서랍에 담아둔 기억을 주로 끄집어내어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두 번째 서랍만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기억들을 어느 서랍에 담고, 또 어느 서랍을 더 자주 열어보느냐는 순전히 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선택에 따라 자신의 과거에 대한 평가를 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두 번째 서랍만 열어보고 자기의 과거를 불쌍히 여긴다. 그러는 사이 자기도 모르게 슬픈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정말로 자기 인생을 아끼려면 이젠 두 번째 서랍을 완전히 잠가 버려야 한다.

차를 운전하는 것은 우리네들 삶과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게 올라가야 할 오르막길이 있는가 하면 페달을 밟지 않아도 잘 가는 내리막길도 있다. 경치가 좋은 길이 있나 하면 울퉁불퉁한 자갈길도 나온다. 우리 모두는 빠른 속도로 이 길들을 쌩쌩 달리길 원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뒤를 돌아보면서 앞으로 나갈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들은 너무도 자주 마음속에 후진기어를 넣은 채 앞으로 가려고 한다. 그러면서 절망하고 좌절한다.

새해가 밝았다. 다시한번 우리 마음속에 기어가 어느 위치에 놓여있는지 확인할 좋을 때다. 전진하려면 반드시 전진기어를 넣어야한다. 전진기어를 넣는 것이 앞으로 나가는 가장 첫 스텝이다

홍영권
(USC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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