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련 갖지 마세요

2008-12-2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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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설자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가로수의 잎은 다 떨어지고 겨울이 왔다는 증거가 역력하다.
겨울해는 짧다. 늦잠자고 일어나 이것저것을 하다보면 점심시간, 조금 움직이다보면 어느새 바깥공기는 어둑해지며 저녁에서 밤으로 이어가며 바삐 하루를 마감하게된다.
사는 방법이 가지가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방법이 아닐것이다 사는태도 사는 생리태도가 인위적인것이라면 생리는 천성적인것이 겠는데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것이며 설령보였다 치더라도 그것은 상황이거나 또는 움직임일께다.
60마일로 달린다는 나이60고개. 주위 지인들의 별세소식이 간간이 들려온다.
언제나 집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정리하겠다는 마음가짐과 조금씩 실천에 옮기고 있지만 이번같이 온집안 구석구석을 확실히 헤쳐보기는 처음이다. 뉴욕사는 사촌동생이 땡스기빙 앞두고 놀러왔다. 원체 깔끔하게 정리정돈을 잘하는줄은 알았지만 자기살림이 아닌 언니의 살림까지 제 살림인양 부엌캐비넷속을 반으로 줄이는 작업을 서슴치않고 “언니 평생에 이것은 안쓸건데 왜 두어야 하느냐?” 고 야단(?)쳐가며 오밀조밀 접씨며 그릇들을 마치 백화점의 물건 배열하듯 정리하는것을 거들며 난 속으로 이것도 아깝고 저것도 아깝고, 안돼…. 하면서도 덩달아 버리고 또 버리는 작업을 했다. 그 뿐이 아니다. 부엌을 말끔히 치우고 난 다음은 다이닝룸에 자리를 잡고 찻장안을 대대적으로 귀한것이라고 아끼던 컵, 커피잔 등등을 대담하게 한쪽 박스에 담아놓는데 아마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버릴 용기는 절대로 못할것같아 눈 꾹 감았다. 다음날은 리빙룸으로 옮겨 옥돌장안에 곱게 자리해있던 장식품들중 그래도 여행중에 추억이 담긴 그것만은 버릴수없다고 우겨대며 자리를 지키해했다. 속으로는 제것도 아니면서 마치 제 물건같이 취급하는 동생이 괘씸(?)하면서도 말이다. 그뿐인가 이층 베드룸으로 옮겨가 옷장마다 걸려있는 옷들을 꺼내며 “ 정말 이해가 안돼네요. 언니 이 옷은 유행이 한참 지난 옷이고 이 옷은 언제 입을려고 드는거야 버리자. 응! 언니! “ 검정 비닐백에 이옷 저옷을 마구 집어 넣는 내모습도 정상이 아니다. 값비싼 옷은 아니지만 추억이 담긴 옷들인데 그래도 난 40여년이 지난 신혼때 맞춘 비로도 코트는 유행이던 아니던 난 정말 멀리 보내고 싶지가 않아 구석진 옷장안에 길게 걸어놓았다. 빽빽했던 내 옷장은 갑자기 반액쎄일을 단행한듯 3분의 1로 확 줄었다. 그런데 늦은밤 잠자리에 누워 내품을 떠날 옷들을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그 옷만은 아까워 다음 날 새벽 동생 몰래(?) 비닐백에 넣어둔 투피스 두벌을 꺼내는 내모습이 웃습기 짝이없다. 정말이지 나 혼자서는 죽었다 깨워나도 아까워 버리지 못하는 못난성격인데 2008년 12월이 다 가기전에 깔끔한 동생덕에 일사천리로 정리를 확실히 해냈다. 이제는 나혼자만이 꼭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사진 정리다. 60여년을 사는동안 수많은 추억을 담은 사진들을 정리하려면 한순간엔 무척 어려울것이다. 한쪽 눈 찔끔 감고 과감히 결단을 내야할 때다. 나중에 쓰레기 통에 들어가는 그날을 없게 하려면 말이다. 한쪽에 쌓아놓은 비닐백과 박스들을 차에 가득 싣고 Salvation Army 를 향해서 달려가는 내마음은 시원하면서도 한편 섭섭함도 따라간다. 옆에서 동생이 내 마음을 알았나, 한마디 한다. “언니! 미련 갖지 마세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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