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리다 만 이곳에, 오늘은 겨울 햇볕이 따뜻하기까지 합니다. 어제야 겨우 정원의 나무도 치고 크리스마스 전등을 달고, 사슴이 끄는 썰매도 뜰 앞에 내놓았습니다. 매년마다 이맘때면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뛰고 기다리는 마음이 조급했는데 올해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유례없이 미국경제가 나빠진 때문입니다. 날 선 겨울이 온 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마음은 움츠러지고, 장사가 안 된다고 걱정하는 사람, 일자리를 잃고 이 겨울을 나야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들리는 바로는 내 고향의 나라도 예외 없이 경제의 한파가 닥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들었읍니다. 더욱이 이맘때면 겨울의 추위도 만만치 않을 때라고 기억됩니다. J형과 가족은 안녕하신지요.
1년이 넘도록 J형으로부터 소식을 듣지 못했으니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때 동아일보사 앞에서 J형을 기다리다, 수척한 얼굴로 그 커다란 키에 구부정한채로 지하철 출구에서 나오는 J형을 보고 놀란 기억은 나의 마음을 지금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새로 말끔히 단장한 청계천을 함께 걸으면서 “이제 서울엔 자가용도 필요가 없지. 난 몽땅 주식에 투자하고 있지. 재미가 괜찮네.”라고 하던 말이 떠올라서 마음에 걸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수씨도 몸이 아프다고 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J형은 나보다 훨씬 머리가 좋고 침착하고 정직해서 법관이 되어야할 사람이었는데, 본인이 이를 마다하고 어려운 사업에 뛰어들어 러시아까지 진출하고, 길리만자로, 아프리카의 들판에서 수많은 별들을 보며 야영을 했다는 이야기를 소설처럼 듣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기도 그렇지만, 고향 서울에는 주식으로 돈을 잃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J형은 괜찮은 것인지요? 제수씨는 병원에 입원까지 했어야 했다는데.
J형은 기억하십니까. 추운 겨울 경북 영천에서 훈련 중 기차로 밤새도록 달려 우리 집에서 잠자고, 아침부터 눈 덮인 덕수궁 담을 돌아 서울의 맛있는 찻집을 한 바퀴 돌고 오후 기차로 귀대하던 때를. J형은 매번 먼저 찻값, 술값, 밥값을 친구들을 위해 때마다 베풀었던 기억이 납니다. 부잣집 아들도 아닌데.
오늘따라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면서 냉랭한 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들을 보았습니다. 둥근달이 조각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여명이 밝아 오기 전에 가는 길을 밝히고 있었습니다. 잎새를 잃은 나무들이 여윈 가지를 하늘을 향해 손을 벌리듯 자람을 멈췄습니다. J형을 생각했습니다.
J형, 틀림없이 크리쓰마스가 또 오고 있습니다. 희망과 사랑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우리의 매일 삶의 영욕을 지배했던 그것들을 머리 숙이게 할 그분이 J형에게나 나에게, 또 우리 모두에게 기쁜 선물을 가져온답니다. 그러나 위에도 말했듯이 우리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그분을 만날 수 없다고 합니다.
J형, 나는 일전에 산 새 오색전등을 앞뜰 나무마다 달아서 오시는 길을 밝히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