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수잔 김(피아노 반주자)

2008-12-12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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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암에 걸렸다고

오래전에 의사로 부터 암선고를 받은적이 있다.

이상하게 하혈을 조금씩 하는 게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는데 어느날 새벽 1시정도 배가 뒤틀리면서 세상이 빙글빙글 돌며 달려들더니 이어 혼비백산으로 병원에 실려갔는데, 수면제인지 진통제인지 깊은 잠에서 깨어난 후에 들은 뜻밖의 의사의 말은 너무도 당연한 어조로 마치 잠자고 밥먹는 얘기하듯이 내가 암에 걸렸단다. 하늘이 퍽 하고 가라앉는 그런 충격적인 엄청난 말을- 내가 무슨 말을 들은거지? “꿈이지? 꿈이야. 이건 꿈이야. 저 의사는 지금 농담하는거야.” 나는 몇번이고 중얼거리면서 일어나 걸으려 하는데 발바닥에 강한 뽄드가 붙은 듯 한 발짝 떼는 게 그렇게 큰 노동인지 몰랐다.

그 한 발짝- 지금도 아니 영원히 잊을수 없다.


사형선고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나는 내 주위를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하나 하나 천천히 내눈에 그리고 내 가슴에 아낌없이 담아댔다.

나는 이렇게 무서운데, 감당을 할 수가 없는데 햇살은 얼마나 눈이 부시게 빛났던지. 길가의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는 얼마나 춤을 추어 대든지, 새들은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노래를 어찌나 잔인하게 불러대는지 푸르다못해 진한 청녹색의 짙게 뿜어나오는 솔잎 내음은 다들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단 말인가.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 바삐 달려가는 자동차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거지? 뼛속 깊이 시려오는 철저한 외로움 속에 연신 뭐라고 남편이 계속 얘길하는 모양인데 귀가멍멍 하면서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던 그 순간을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두고 가야하는 아쉬움과 그리움, 그리고 질투와 원망이 범벅이 되어 철저히 혼자되는 잔인하리만큼 칠흑같은 외로움에 절규했던 기억들.

그날밤 잠 못 이루는건 당연지사 평상시 제대로 찾지도 않던 하나님. 내 필요할 때만 잠시 빌려왔었던 그 하나님을 밤새 긴 긴시간을 얼마나 못살게 했는지.

그중에 우습기도 하지만 절박한 아픈 기억이 있다. 무방비 상태에서 가야 하는 황망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6살짜리 막내 아들녀석에 목이 메여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매달리다 못해 어찌나 절박했던지 순간 스쳐지나가는 생각에 하나님도 마음이 약해질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다들 죄지은 것 용서해달라고 한다는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지 혹시나 하나님 나를 벌주시는가 싶어 반대로 내 어릴 적 착한 일 한 것 있는대로 기억해내면서 그 행동 봐서라도 살려달라고 애원했던 기억이 난다. 한마디로 인간의 비굴한 본능이었으리라.

어쨌든 얼마후 그놈의 잔인무도한 놈, 암이 도망갔는지 오진으로 판명돼 생사를 넘나든 경험을 호되게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고 다들 어린애처럼 하나님께 기도했다 한다. 하지만 지금 그 기도가 내 살아가는데 큰 나침반이 되고 있다. 만일에 내가 착한 일 한 게 없었으면 어땠을까. 생색낼게 없는 인생 자신있게 선한 일 했다고 보람있다고 할 만한게 없다면 생각만도 끔찍하다.

다시 살아난 행복감에 살아있는건 다 아름답고 모든 움직이는 것들이 나와 함께 한다고 하니 오늘을 너무나 살기 원했던 어제 떠난 이들의 몫까지 힘차게 살아야지 그리고 먼 훗날 하나님 만날 때 자신있게 말할려면 이땅에서 나와 남편과 내 아이들만을 위해서가 아닌 신음하는 이웃과 내 손을 간절히 원하는 곳에 어디든 힘차게 뛰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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