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앵무의 화전태(花前態) 와 화류태(花柳態)
춘앵무는 궁중 무용의 하나로 조선말기 순조 때 효명세자가 어느 봄날 버드가지에서 노니는 한 쌍의 꾀꼬리 새를 보고 그 소감을 무용화 한 춤이다.
6자의 화문석 위에서 벗어남이 없어야 하는 춘앵무는 한없이 느린 춤사위 와 우아한 동작이 춤의 생명이다.
왕 앞에서 추었던 이유로 해서 그 감정의 표현 또한 매우 절재 되었다.
노란색의 화려한 의상도 멋스럽지만 그 춤사위에 대한 용어도 복잡 하다.
그 중 하나가 “화전태(花煎態)” 이다
참 어려운 용어 이다. 글자의 뜻 인즉 꽃 앞의 자태 인데, 다시 말해서 살짝 미소를 머금은 꽃 앞의 우아한 자태를 말한다.
우리의 궁중 무용은 무원들이 춤을 추면서 왕과 시선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러나 바로 이 화전태 춤 사위에서는 왕과 시선을 마주 칠 수 있었고 우아하게 미소도 지을 수 있었다.
꽃 앞에서 미소를 머금은 우아한 새의 자태처럼. 이러한 미소도 어렵 거니 와 화류태(花柳態)로 흐르면 천박 하다 하여 다시는 춤을 못 추게 하였다 한다.
오늘의 우리 한국 춤의 흐름은 내면의 깊이 보다는 의상의 화려함이 우선이고, 화전태의 지나친 규범도 문제 이지만 더욱 염려됨은 화류태로의 흐름이다.
우리 전통문화를 사상적 배경 없이 이해 하려 든다면 어려운 측면이 있듯이 한국의 전통 음악이나 춤도 마찬가지다.
정조 때 정립된 우리의 전통 무예도 절도의 동작 보다는 끊임이 없는 연속적인 유연함 속에 신체의 무게 중심을 안정 되게 움직이며 상대의 허를 간파하여 공격 한다.
춘앵무의 춤사위가 그러 하듯이 우리 춤의 동작도 안정된 호흡 속에 끊임 없는 춤사위가 생명이다.
널뛰듯 덜렁거리거나 자연스런 춤사위가 아닌 가식적인 교태는
바로 화류 태로 있어서는 아니 되는 표현 동작인 것이다.
미국에서 한국 춤을 추는데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은 의상이나 갖춰야 하는 의물의 구입 비용 등 경제적 어려움도 크지만 더욱 어려운 한 면은 한민족의 전통적인 사상적 이해가 배제됨 이다.
한국 춤의 배경을 단순 하게 무속 신앙과 관계 짖는 편향된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한민족이 이어온 관습 속에 형성된 우리의 전통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그 핵심적 부분을 재 창조 하여 그 가치를 높이는 예술적인 표현의 하나로 인식 될 수만 있다면……
온돌 문화 속에 형성된 집안의 어른은 아래쪽에 앉는 것.
신랑 신부의 혼인식 때 신랑이 청색 옷을 입는 것은, 청색은 시작이고 해가 뜨는 동쪽을 상징 한다는 오랜 관습적인 사상이라 생각된다.
오늘날 왜 어른은 아래쪽에 앉아야 되느냐?
왜 나의 취향이 아닌 청색 옷을 입어야 되느냐고 되 묻는 다면 그리고 꼭 그래야만 되느냐 하면 확언으로 답 할 수는 없다.
새벽기도를 통해 그 이루어짐이 크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저녁기도는 안되고 새벽기도야만 합니까 라는 우문과 같지 않을는지……
우리의 모든 관계도 그렇고 삶의 방법도 그렇고
기도의 방법도 그렇고 춤의 방법도 그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격식 과 규범으로, 지켜져야 할 것은 지켜가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고. 화전태의 개념도 어렵지만, 화류태로의 흐름은 없어야 함은 지켜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