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김희숙(전 방송인)

2008-11-1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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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라는 이름에 가지는 행복

매일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도대체 언제쯤 클까 염려를 하곤 합니다. 뒤늦게 낳기 시작한 아이 셋, 그 중의 막내는 이제 여덟 살,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이 녀석은 아직 자동차 시트에 앉아야 할 만큼 체중이 덜 나가는 꼬맹이지만, 생각만큼은 구렁이가 몇 마리 속에 들어앉은 것처럼 머리를 굴립니다.

며칠 전의 일이지요. 방과 후, 집에 돌아와 반 톡 잘라낸 자몽을 허겁지겁 먹느라 미쳐 곁에 두었던 영어숙제 종이를 치우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주스 얼룩이 번져서 못쓰게 된 것을 발견하곤 냅다 성질을 부리며 구겨버린 겁니다. 당시에야 화가 나서 벌인 짓이었지만 모두 다시 써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을 깨닫곤, 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고갤 파 묻고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로 쓰는 것도 아니고 손으로 깨끗하게 다시 써야만 하는데, 앞뒤 3장의 분량이 그 어린 아이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던 게지요. 난 작은 몸짓의 아이를 품에 안고 도닥이며, 엄마도 예전에 학교 다닐 때 같은 경험을 했어, 누나도 컴퓨터로 작업 했던 것 모두 날려 버리고 펑펑 울었던 것 기억나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거야, 등등 아이의 기분을 전환시키려 무진 애를 썼습니다. 조금 나아진 듯 하더니 웬걸, 다시 부엌 탁자로 돌아와 못쓰게 널려진 숙제를 보더니 이젠 원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몽 부대를 모두 내다 버려라, 내 대신 써달라, 내일 학교에 가질 않겠다, 등등 온갖 시비와 위협을 해대는 꼴이라니. 네 잘못은 네가 풀어야지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엄만 곁에서 도와줄 순 있지만 해결은 네 몫이고 네 책임이지 않느냐고, 우리 둘 실갱이의 반복된 대화는 거의 한 시간 가량 지속되다가 급기야 맴매를 들어야 알아들을 모양이라 소리를 높이는 데까지 갔습니다. 우당탕탕.

반 시간이 흐른 후, 감정이 가라앉았다며 아이가 조용히 숙제를 시작했습니다. 거의 11시까지 하고 나서 다음 날 아침 6시에 깨워 달라며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 새벽 6시에 깨운 것은 내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일어나, 멀쩡한 얼굴로 학교 가기 전까지 숙제를 마쳤다는 거지요. 와우, 그 기분을 어찌 표현 해얄지. 신통하고 예뻐서 머리를 쓰다듬고 뽀뽀를 했더니 그 아이 하는 말,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면 해결 방법이 보인다는 겁니다. 어른스럽게 얘기하는 여덟 살 배기를 바라보며 난 이 아이가 갑자기 불쑥 커 버린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안으면 난짝 내 몸에 올라타 목을 끌어 안고 “엄마, 사랑해” 라고 속삭이는 내 아들. 행복이 전신에 물결로 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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